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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時乙

時乙

미상 ~ 1925.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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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時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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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광정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와 출신지 등은 확인할 수 없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중국으로 이주한 후 린장현(臨江縣)에서 거주하였다. 이후 광정단(匡正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광정단은 1922년 만주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1922년 창바이현(長白縣)을 중심으로 활약하던 5개의 독립운동단체 대표들은 회의를 열고 각 단체를 해체하고 통합기관으로 광정단을 조직할 것을 결의하였다. 주요 간부진으로 단장 김호익(金虎翼), 총무 윤덕보(尹德甫), 군무장(軍務長) 강진건(姜鎭乾), 재무장 김관용(金寬用), 비서장 장승언(張承彦)이 임명되었다. 이후 군사적인 조직과 훈련을 통하여 광정단의 항일투쟁은 더욱 강하게 전개되었다. 설립 이래 광정단 소속 독립군은 국내로 잠입하였으며, 일제 식민통치 기관의 파괴, 친일파 및 밀정 숙청, 무기구입, 군대 양성과 같은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광정단에 가입한 시점과 정확한 지위는 알 수 없다. 다만, 『동아일보』 등에서 ‘광정단의 수령’이라고 지칭한 것으로 보아 광정단 내에서 지위가 높았고 간부진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광정단의 간부로서 단체의 목적에 맞추어서 항일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이어가던 중, 1925년 12월 10일 일제의 사주를 받은 중국 관헌에 의해 붙잡혔고, 같은 달 17일 국내에 있던 중강(中江) 일제 경찰서로 압송되었다. 압송이 되던 중 중강경찰서 관내 호하주재소(湖河駐在所) 근처 압록강 하류 높은 벼랑에 이르자 탈출 시도를 하였다. 호송 순사의 등을 차고 달아나려 하였으나, 놀란 일제 경찰은 총을 쏘았고, 결국 가슴에 총을 맞고 압록강에 떨어져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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