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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時雨

時雨

187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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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時雨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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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이천(利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이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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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단지결사대
  • · 대한광복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9) 경기도 이천군(利川郡)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78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이동식(李東植)을 사용하였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중국 간도지역으로 이주하고, 지린성(吉林省) 허룽현(和龍縣) 국자가(局子街) 적안평(赤岸坪)에서 거주하였다. 이후 대한민단단지결사대(大韓民團斷指決死隊, 단지결사대),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 등 독립단체에 가담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16년 국자가 적안평(赤岸坪)에 있던 배문의숙(培文義塾)의 교사로 재직하며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교육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2월 18일과 20일 2일간 국자가 하장리(下場里) 연길도윤공서(延吉道尹公署) 외교과원 박동원(朴東轅)의 집에서 항일독립운동단체 결성을 위한 회의가 비밀리에 열렸다. 이때 국자가, 용정촌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던 이홍준(李弘俊)·이성근(李聖根)·박동원·김영학(金永學)·김정(金精)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이 회의에서 광복단을 조직한다는 것이 결정되었는데, 광복단은 대한광복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광복단 결성과 함께 간도지방의 교회 및 각 단체는 실력자들과 연락을 밀접히 하고 자주독립운동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 북간도의 각 단체는 독립을 선언하고 한국의 독립을 위한 만세를 부를 것, 독립선언서가 발표되면 북간도의 각 단체는 용정촌에 모여서 독립을 선언하고 민족의 기세를 앙양시킬 것을 결의하였다. 회의 참석자들은 일제 경찰에 체포될 것을 각오하고, 희생할 것을 맹세하는 혈서를 작성하였다. 이후 1919년 3월 13일 용정촌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최봉렬(崔鳳烈)과 함께 적안평 지방위원이 되어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할 대표들이 사용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919년 3월 이후에는 항일무장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같은 해 9월 안투현(安圖縣) 사방정자에서 단지결사대가 결성되는 데 주요인물이 되었다. 단지결사대의 형태는 주변 부대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졌다. 황용기(黃龍起)가 총무부장직을 맡아 단지결사대의 대표직을 담당하였고, 김정일(金庭一)·안석진(安錫鎭) 등과 함께 부원들을 통괄하는 대장 직을 맡았다. 일제 측의 기록에 따르면, 단지결사대의 총 인원은 대략 400여 명이며, 식량 및 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고 한다. 단지결사대 부원 50여 명을 이끄는 대장으로서 참모 박재하(朴載夏)와 함께 활발하게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9월 11일 부대원들과 함께 안투현 소사하(小沙河)를 떠나 두도구(頭道溝)에서 약 7리 떨어진 허룽현(和龍縣) 이도구(二道溝) 유동(楡洞)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일제에 저항할 것을 강조하는 격문을 배포하였고, 군자금 및 식량을 모으기 위한 활동에 들어갔다. 이러한 활동을 알게 된 일본 총영사관은 경찰을 두도구에 파견하여 이도구 신흥리(新興里)에 있던 단지결사대 대원들을 붙잡기 위한 작전에 들어갔다. 일제 경찰들의 대대적인 검거에 의해 단지결사대를 이끄는 주요 인사들이 붙잡혔으나, 다행히 이때 검거되지 않았다. 일제 경찰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1919년 10월 20일 이범윤(李範允)의 부하였던 김홍균(金鴻均)과 함께 허톈(和田)을 거쳐 펑톈(奉天)으로 갔다고 한다. 펑톈행의 목적은 당시 김홍균과 함께 군자금 모집 및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원들을 모집하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보인다. 1922년 대한광복단의 총재직을 맡고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안투현에 근거지를 마련한 후 김성극(金星極) 등과 함께 군자금 모집, 대한광복단 단원의 확충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200여 명의 대원을 모집할 수 있었고, 지속적인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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