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三賢
三賢1900. 11. 16 ~ 1937. 3. 1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 · 정의부
- · 국민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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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900년 11월 16일 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 오북면(吾北面) 금하리(金下里) 북상동(北上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고향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고, 이후 일제 경찰의 감시를 받다가 동지들과 같이 중국 지린성(吉林省) 둔화현(敦化縣)으로 망명하였다. 이때 이동훈(李東勳)·한종국(韓忠國)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1922년부터 1932년까지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정의부(正義府)·국민부(國民府)·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 등의 단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2년 1월경 한족회(韓族會)·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등 독립운동 단체들이 연합하여 통군부(統軍府)를 결성하였고, 그 해 6월 3일 중앙직원회의에서 “문호를 대개방하고 각 다른 기관과 더불어 무조건으로 통일하되 일체 공결에 복종한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같은 해 8월 23일에는 8단 9회의 대표 71명이 환런현(桓仁縣) 마권자(馬圈子)에서 남만한족통일회의를 개최하여 통군부를 대한통의부로 확대·개편하였다. 그러자 대한통의부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에 진력하였다. 1923년 10월 하순경 김태묵(金泰默)·문학빈(文學彬) 등과 같이 각각 10여 명의 부하를 데리고 콴뎬현(寬甸縣) 석주자(石柱子) 대황구(大荒溝)와 대파구(大皮溝) 일대를 배회하며 얼음이 얼기 전에 국내로 잠입하고자 계획하였다. 1924년 여름에는 대원 김익준(金益俊) 등과 같이 평북 일대로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통의부가 군권 장악과 운동 노선의 견해 차이로 와해되면서, 기존의 통의부는 고본계(固本契), 학우회 등 8개 단체들과 동년 11월 24일 전만통일회를 개최하고 정의부를 조직하였다. 이때 정의부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9년 3월 지린성에서는 민족유일당조직동맹(民族有一黨組織同盟)에 참여한 각파의 대표자들이 참석한 참의부(參議府)·정의부·신민부(新民府) 통일회의를 개최하였고, 3부를 통합한 국민부를 조직하고자 선언하였다. 동년 5월 각 부의 해체로 국민부는 정식 출범하였고, 한국인 보호와 무장투쟁을 주요 임무로 삼았다. 이때 국민부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국민부 산하 별동대 소속으로서 대장 이진무(李振武) 휘하에서 대원 홍학순(洪學淳)·김태묵(金泰默)·안국형(安國亨)·박인홍(朴仁弘) 등 여러 명과 같이 국내로 진입하여 평북 일대에서 수년간 군자금 모집 활동을 펼쳤다. 이후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이 성립되면서 조선혁명군이 조직될 때 이에 가입하여 무장활동을 이어갔다. 또한 대원들과 같이 국내로 진입하여 차련관(車輦館) 주재소, 삼봉(三峯) 주재소 등 여러 일본 주요기관을 공격하였다. 그러다가 1932년 1월경 중국 지린성 안둥(安東) 일대에서 자금조달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신의주로 압송되었다. 1933년 6월 26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겪다가, 1937년 3월 19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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