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秉進
秉進1869 ~ 1920.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충의대
- · 대한의군부
포상 정보
- · 독립장(1995)
관련 사건
- · 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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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장(1995) 함경북도 길주(吉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20년 당시 52세인 것으로 보아 1869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이병진(李炳進)을 사용하였다. 1894년 외부주사(外部主事)로 활동하였다. 1903년 북간도관리사(北間島管理使) 이범윤(李範允)을 수행하여 간도로 이동하였다. 1905년 청국 관헌과 지주들로부터 한인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된 충의대(忠義隊)에서 영장(營長)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노령 연추(煙秋)에서 이범윤과 함께 창의소(倡義所)를 조직하였다. 1919년 4월 간도 옌지현(延吉縣)에서 이범윤·진학신(秦學新)·최우익(崔友翼)·김청봉(金淸鳳)·김현규(金鉉圭) 등이 조직한 대한의군부(大韓義軍府)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12월 대한의군부 중부(中部) 소속 이정국(理正局) 제1이정국장에 선임되었다. 이후 대한의군부 의군산포대(義軍山砲隊) 군무과장(軍務課長), 군정서(軍政署) 이정국장 겸 경신분국(警信分局) 제1과장,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제2중부지방회 지인향(志仁鄕) 남북동지회장(南北洞支會長)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자금과 군수품 모집에 주력하였다. 일제는 간도지역 독립운동단체를 탄압하기 위해 1920년 8월 이른바 ‘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을 토대로 같은 해 10월 일제는 ‘훈춘사건(琿春事件)’을 조작하여 대규모 병력을 간도에 파견하였다. 간도에서 일본군과 독립군부대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제는 간도조선인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게 되는 이른바 ‘경신참변(庚申慘變)’을 일으켰다. 일제는 2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간도에 침입하였다. 주력 부대인 조선군 제19사단은 옌지(延吉)·용정(龍井)·허룽(和龍)·훈춘(琿春) 일대를 ‘토벌’ 구역으로 설정하였다. 이들 지역에서 일제는 1920년 10월 14일부터 11월 20일까지 항일단체들과 항일기지로 지목되는 마을과 학교, 교회 등에서 한국인 학살을 자행하였다. 1920년 10월 옌지현 지인향(志仁鄕) 의란구(依蘭溝) 자택에서 일본군에 의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최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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