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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萬葉

萬葉

1906 ~ 1928.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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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萬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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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정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기록에 따르면 1928년 사망 당시 23세로, 1906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 만주로 이주한 시기 등은 알 수 없다. 1928년경 재만(在滿) 독립운동단체인 정의부(正義府) 지방조직의 검무감(檢務監)으로 활동하였다. 1924년 11월 24일 성립된 정의부는 입법·사법·행정 등 3권 분립에 의거한 자치기구와 군사기구인 의용군을 중앙조직으로 편성하였다. 그리고 하얼빈(哈爾濱) 이남의 광활한 남만주지역을 관할지역으로 해, 그곳에 형성된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지방조직을 설치하였다. 정의부의 지방조직은 10가장(家長, 10호), 구(區, 50호), 백가장(百家長, 100호), 지방(地方, 500호), 총관구(總管區)(1,000호)가 단계별로 편제되었다. 이 중 가장 큰 단위인 총관구에는 최고 지휘자인 총관 밑에 검무감 1인, 검무원 2인, 서계 1명, 서기 1명이 임명되었다. 따라서 검무감은 한인가옥 1,000호를 담당하는 총관구의 2인자였다. 검무감은 중앙조직에서 관할민의 생계 또는 항일활동을 위해 하달된 정책을 하부기관인 지방에 전달시키거나 또는 직접 시행하는 업무, 관할 한인간의 분쟁사항을 처리하는 업무, 검무원과 함께 관할민으로부터 의무금을 징수해 중앙에 보내는 업무 등을 수행하였다. 또 의무금이 목표액만큼 징수되지 않을 경우에는 의용군에서 파견된 독립군 및 검무원을 대동하고 직접 군자금 모집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검무감의 임무가 이와 같았기에, 1928년 8, 9월 카이위안현(開原縣) 구장(區長) 박재수(朴在秀)와 카이위안현과 칭위안현(淸源縣)을 대상으로 무장을 갖추고 군자금 모집 활동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활동을 방해하는 친일 밀정 3명을 처단하였다. 이 사실은 곧 일제에 탐지되어 철령(鐵嶺)영사관 소속 도록(陶鹿)분관 경찰대의 추적을 받게 되었다. 두 사람은 1928년 11월 25일 다구(茶溝)라는 지역으로 가 정의부 연락원의 집에 숨었다. 그러나 이를 간파한 일제의 도록분관 경찰대 소속 마쓰오카(松岡) 경부가 이끄는 경찰대가 같은 달 26일 새벽 기습공격을 해왔다. 일제 경찰대의 습격에 총을 쏘며 응전하였으나 결국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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