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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東云

東云

1901 ~ 1920.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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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東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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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군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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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자료에 따르면 1920년 당시 20세로, 1901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와 만주로 이주한 시기 등은 확인할 수 없다. 사망 당시 거주지는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모루구(母樓溝)이다. 만주에서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병사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독립단원(大韓獨立團員)의 병사였다는 일본군의 기록이 남아있으나, 오기(誤記) 혹은 오인(誤認)으로 보인다. 대한독립군은 1919년 만세운동 이후 홍범도(洪範圖)와 그의 동지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단체로, 옌지현 등 북간도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 8월부터 활발한 국내진공작전을 벌였고, 1920년 6월에는 봉오동(鳳梧洞) 전투에서 일본군 1개 대대(大隊)를 격퇴하며 일본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이때 대한독립군을 추격한 일본군의 주력 부대는 조선군 제19사단으로, 함경북도 나남(羅南, 현 함경북도 청진시 일대)에 주둔하면서 두만강 일대의 국경을 지키는 부대였다. 1919년 이후 북간도 일대를 중심으로 한 대한독립군·국민회군(國民會軍)·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 등 독립군의 국내진공작전이 활발해지자, 일본군은 두만강 너머의 독립군 세력을 제압할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에 제19사단은 1920년을 전후하여 북간도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펼쳤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1920년 1월 제19사단의 직할연대인 제74연대는 옌지현의 모루구에서 독립군 ‘토벌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이때 임성칠(林成七)과 함께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다가 체포되었다. 이후 일본군에게 조사를 받던 중 주변에 있던 목침(木枕)을 일본군에게 던져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같은 해 1월 4일 결국 일본군의 혹독한 고문과 조사 과정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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