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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基浦

基浦

1901. 11. 25 ~ 1935.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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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基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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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奉化)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봉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군비단
  • · 대한국민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0) 1901년 11월 25일 경상북도 봉화군(奉化郡) 소천면(小川面) 분천리(汾川里)에서 태어났다. 활동 당시 이포연(李包渕)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주로 함남 삼수군(三水郡)과 중국(中國) 지린성(吉林省) 창바이현(長白縣)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20년 (음)6월 중국 창바이현 13도구(十三道溝)로 이주하였다. 같은 해 (음)7월 창바이현 17도구(十七道溝) 동평(東坪) 덕리(德里)에 본부를 둔 군비단(軍備團)에 입단하였다. 군비단은 1920년 1월 당시 단장 이은향, 부장 이태걸, 군사부장 이동백, 재무부장 윤덕보, 참모부장 김찬(金燦), 경찰부장 정삼성(鄭三星), 문사부장 김종기(金宗基), 외교부장 조훈(趙勳), 소집부장 김정익(金鼎益), 공창부장 김진무(金振武)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의 주된 목적은 무장투쟁을 통해 조국을 독립시키고자 함이었으며, 이를 위해 각지에서 군자금과 단원들을 모집하였다. 하지만 무장 활동의 어려움을 깨닫고 소대 단위로 나누어져 각지의 일제 통치기관을 파괴하고 일제 경찰을 사살 처단하였다. 1921년 9월에는 함남 갑산군 동인면 금정포주재소를 폭파하고, 무기와 탄약을 탈취하였다. 1921년 1월 태극단(太極團)·광복단(光復團)·대진단(大震團)·흥업단(興業團) 등의 대표들과 함께 연합회를 구성한 뒤, 같은 해 10월 이들 단체들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대한국민단(大韓國民團)으로 재편성되었다. 1920년 군비단에서 통신원으로 활동하였다. 통신원의 주 임무는 단원 사이의 문서 전달 및 기타 연락사무였다. 이 통신원활동과 더불어 직접 무장활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군비단 단장 윤덕보(尹德甫)는 함남 삼수군(三水郡) 호인면(好仁面) 영성(嶺城)금융조합을 습격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김성연(金成渕) 등 약 26명과 함께 각자 무기를 휴대하고 창바이현 군비단 본부를 출발하여 창바이현 18도구(十八道溝) 이전동(梨田洞) 부근에서 배로 압록강을 건넜다. 삼수군 진면(鎭面) 한평리(漢坪里) 부근에 잠입하여 이동하던 중 눈보라가 휘몰아쳐 전진이 불가능하였다. 이에 귀환하던 중 작전을 변경하여 삼수군 호인면 삼수경찰서 운전(雲田)임시경찰주재소를 공격하기로 하였다. 김성연의 지휘 하에 주재소로 가서 일제 순사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주재소를 전소시키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같은 활동이 발각되어 1926년 일제 경찰에 의해 붙잡혔다. 같은 해 9월 2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주거침입죄, 강도죄, 살인미수죄, 방화죄, 총기화약취체령 위반, 폭발물취체벌칙 위반,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8년을 받고 옥고를 겪다가 1933년 3월 3일 가출옥하였다. 하지만 이후 다시 투옥되었다. 옥고를 겪던 중 1935년 12월 10일 함흥형무소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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