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奎炳

奎炳

1854. 3. 14 ~ 1920. 4. 23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奎炳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함북 명천(明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명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국민회
  • · 대동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9) 1854년 3월 14일 함경북도 명천군(明川郡) 서면(西面) 용하리(龍河里)에서 출생하였다. 활동 당시 이명으로는 이병규(李炳奎)를 사용하였다. 주요 활동지는 만주(滿洲)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룽징(龍井)지역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1920년 4월 23일 사망하였다.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1911년 (음)10월 3일 옌지현 룽징시(龍井市) 서양동(西陽洞)에 봉명학교(鳳鳴學校)를 설립하고 수많은 한인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당시 봉명학교는 민족교육기관으로 오랜 기간 한인들의 교육을 담당하여 왔다.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1920년과 1932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경찰에 의해 폐쇄당하기도 하였다. 1919년에는 대동단(大同團)의 간도중부회(間島中部會)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대동단의 결성은 1919년 3월 말경 이뤄졌으며 결성을 주도한 이는 김가진(金嘉鎭)·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김찬규(金燦奎) 등이었다. 대동단에는 관료·유림·학생·의병·승려·여성·보부상 등 각계각층에서 수만 명의 단원이 참여하였으며 전국적인 조직망도 갖췄다. 정식 명칭은 조선민족대동단이라고 명명하였다. 대동단은 설립 취지문에서 일본제국의 통치에서 이탈하여 독립국을 형성하고, 세계의 평화를 확보하며, 사회주의를 철저히 실행한다는 등의 3대 강령을 내세웠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점조직 형태로 조직되었다. 경기·충청·전라·평안도 등 국내뿐만 아니라 만주 안둥현(安東縣, 현 단둥) 등 동포들이 살고 있는 국외에도 지부를 설치하고 단원과 자금을 모집하였다. 서울 본부와 긴밀한 연락을 하면서 항일운동에 동조하는 지방의 유지들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였다. 1920년에는 북간도 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인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중앙지방총회(中央地方總會) 회장(會長)으로 활동하였다. 대한국민회는 조선독립기성회(朝鮮獨立期成會)가 1919년 4월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조직되자 그 명칭을 대한국민회로 개칭한 단체이다. 초기 대한국민회는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 간도지부로서 활동하였으나, 대한국민의회가 상하이의 임시정부와 통합됨으로써 임시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활동하였다. 대한국민회는 본부를 옌지현에 두고 있었으며 그 조직은 행정조직과 군사조직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다시 행정조직은 중앙조직과 지방조직으로 나뉘어졌다. 따라서 대한국민회 지방조직의 중앙지방총회 회장으로 재만동포들을 관리함으로써 독립운동에 전념하였다. 대한국민회에서 중앙지방총회 회장으로 활동 중 1920년 4월 23일 병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연⋮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