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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圭龍

圭龍

1887. 6. 12 ~ 1955.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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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圭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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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만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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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치는 서울특별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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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신흥강습소
  • · 경학사
  • · 신흥학교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87년 6월 12일 서울에서 아버지 이회영(李會榮)과 어머니 서씨(徐氏) 사이에서 큰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11세손이며, 조선조에서 6명의 정승과 2명의 대제학을 배출한 삼한갑족(三韓甲族) 출신이다. 1907년 어머니 서씨가 돌아가고, 아버지 이회영이 1908년 재혼하면서 큰아버지 이건영(李建榮)의 양자로 출가하였다. 나라가 망한 뒤 1910년 12월 이회영 일가 60여 명이 만주 뤼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로 망명할 때 함께 동행하였다. 이들 일가의 망명은 해외 독립운동기지를 개척하기 위한 것으로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07년 결성한 신민회는 고종의 강제퇴위, 대한제국 군대 해산 등을 맞이해 계몽운동만으로는 국권회복을 이루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해외 독립운동기지를 개척해 독립군을 양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이회영은 3년 여에 걸쳐 후보지를 물색하고 1만석에 달하는 일가의 집안 재산을 정리한 뒤 집단 망명을 단행한 것이었다. 1911년 봄 삼원보 고신자(孤山子)에서 노천군중대회가 열리고 한인 자치기관인 경학사(耕學社)가 조직되자, 서무를 맡아 이주한 교민들의 정착과 농업생산을 지도하였다. 경학사란 이름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자는 주경야독의 취지에서 붙여진 것이다. 이어 그해 4월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가 설립되자 교장 이동녕 밑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1914년 국내에 들어온 생부 이회영의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하고, 이회영이 추진하던 고종 망명계획이 고종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백지로 돌아가자, 1919년 2월 생부를 모시고 베이징(北京)으로 갔다. 1924년 양부 이건영이 노약해져 삼원보를 떠나 국내에 들어올 때, 종택(宗宅)이 있던 파주(坡州) 오목리(梧木里)로 모시고 왔다. 오목리에는 6대조 이종성(李鍾誠)이 영의정 당시 지었던 종택이 있었고, 이종성을 배향하는 오천서원(梧川書院)도 있었다. 파주에 머물면서도 흩어져 있는 국내외 일가들과 연락을 취하고 군자금을 조달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32년 11월 이회영이 상하이(上海)를 떠나 만주로 향하다가 중국 다롄(大連)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된 뒤 모진 끝에 옥사하자, 유해를 봉환하기 위해 다롄까지 가서 유해를 파주 선영에 모셨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장석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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