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求泰
求泰미상 ~ 1922. 7. 8
관련 단체
- · 서로군정서
포상 정보
- · 애국장(199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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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8) 출생연월일과 출신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주요 활동지는 평북 자성군(慈城郡) 지역이다. 1922년 독립운동 중 일제 경찰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무장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던 한인들은 만주로 이동하여 많은 무장독립운동단체를 조직하였다. 그들은 당시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를 중심으로 일본군과 전투를 전개하는 한편,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 모집과 일본군 부대 등을 급습함으로써 일제에 큰 타격을 입히는 등 활발한 무장독립운동을 벌였다. 1922년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서 활동하였다. 서로군정서 조직은 독판부(督辦府) 아래 사령부, 참모부, 정무청(政務廳), 군무청(軍務廳) 등을 두었다. 간부진은 독판에 이상룡(李相龍), 부독판 여준(呂準), 정무청장 이탁, 군무청장 양재훈(梁在薰), 참모부장 김동삼(金東三), 사령관 지청천(池靑天), 법무사장 김응섭(金應燮), 내무사장 곽문(郭文), 재무사장 남정섭(南庭燮), 군무사장 양규열(梁圭烈), 학무부장 김형식(金衡植) 등이었다. 서로군정서는 서간도 거주 한인들에게서 군자금을 갹출해 무기를 구입하는 한편, 신흥강습소와 신흥중학교(1912)를 잇는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설립(1919. 5. 3)하고 본격적인 독립군 양성에 나섰다. 1922년 7월 8일 일제 밀정을 체포하기 위해 서로군정서에서 파견된 의용대 토벌대장의 길안내를 맡아 평북 자성군(慈城郡) 대안(對岸)인 삼도구(三道溝)로 출동하였다. 삼도구에 있는 일제협력자 안세규(安世奎)를 체포하기 위해 민단지부(民團支部)를 포위 공격하였다. 그러나 중국 순경(巡警)의 간섭으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퇴각하였다. 퇴각 도중 일제 경찰 10여 명과 조우하여 치열한 교전을 벌이다가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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