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
李景浩1896. 6. 7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혼춘의용대
- · 철혈단
- · 한국혁명위원회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5) 1896년 6월 7일 함경북도 회령군(會寧郡) 화풍면(花豊面) 학포동(鶴浦洞)에서 출생하였다. 주요 활동지는 중국(中國)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지역으로 1924년 일제 경찰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중국 간도로 이주한 후 사립보통학교 교원으로 활동하였다. 1915년 12월 중국 지린성 훈춘현(琿春縣)에서 이광(李光)과 황병길(黃丙吉) 등이 조직한 혼춘의용대(琿春義勇隊)에서 참총(參總)으로 활동하였다. 1923년 (음)6월 중순경 중국 옌지현 상의사(尙義社) 동불사(銅佛寺) 선방자(船房子)에서 김중언·김광연과 함께 국내로 잠입하여 철혈단(鐵血團)을 조직하였다. 철혈단은 1920년 5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결성되었는데 단장은 노무용(盧武用)이었고, 간부는 나창헌(羅昌憲)·김기원(金基源)·김재희(金載熙) 등이었다. 단원은 경기도와 강원도 출신을 중심으로 약 40명으로 구성되었고, 임시정부에 반대하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주된 활동은 필요한 무기 구입자금을 구하기 위해 단원들을 국내로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할 것을 계획하였다. 1923년 (음)10월 6~7일경 밤 10시 허룽현(和龍縣) 덕신사 삼계동(三溪洞)의 김치만 집에 잠입하여 “우리들은 독립군인데 나라의 독립을 위해 군자금이 필요하니 500원을 군자금으로 제공해 줄 것”을 요구하여 35원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음]11월 18일에는 구원사(口圓社) 대희망동(大希望洞) 김길문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 100원을 모집하였다. 또한 조직의 확산을 위해 안세진·허용권 등을 철혈단에 가입시켰다. 그러나 안세진·허용권 등이 일본 경찰에 붙잡히자 중국 진삼록(陳參祿) 삼계리(三溪里) 청하동(淸河洞)으로 피신하였다. 그곳에서 한국혁명위원회(韓國革命委員會) 회원 염칠학·김호석 등과 만나 한국혁명위원회에 가입하였다. 이후 혁명위원회 회원들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에 매진하던 중, 1924년 6월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재판 과정에서 당당하게 “대한 사람으로서 대한 독립을 운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군자금을 모집하는 것은 상당한 일이며 또 대한민족으로서 대한독립운동의 자금을 내는 것은 의무로 반드시 복종할 일이며 우리가 폭탄과 무기를 휴대한 것은 인민에게 신용을 보이기 위하여 가지고 다니는 것이며, 군자금을 모집한 일은 있으나 강탈한 일은 없다”고 진술하였다. 1924년 10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강도죄,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폭발물취체벌칙 위반 등으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겪다가 1930년 4월 26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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