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瓊贊
瓊贊1886 ~ 1920. 11. 8
관련 단체
- · 의군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청산리전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920년 당시 35세였으므로 1886년생으로 추정된다.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주요 활동지는 만주(滿洲) 훈춘현(琿春縣)지역으로 1920년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직후 동만주 지역 항일 의병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무장 독립운동단체인 의군부(義軍府)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의군부는 의군단(義軍團) 또는 의군산포대(義軍山砲隊)라고도 하는데, 창립 당시 총재는 이범윤(李範允), 총사령관은 김현규(金鉉圭), 참모장은 진학신(秦學新), 총무부장은 최우익(崔友翼), 군사부장은 김청봉(金淸鳳)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군사단체이다. 의군부는 본부를 왕칭현(汪淸縣)에 두고 청산리전투 후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에 통합될 때까지 동만주 지역에서 무장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의군부 산포대원으로 의군단의 주요 활동지인 왕칭현 춘양사(春陽社) 북삼차구(北三岔溝)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1920년 10월 일본군이 이른바 훈춘사건을 일으키면 간도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여 독립군을 ‘토벌’하고자 하였다. 이때 독립군 부대들은 일본군을 피해 이동하였다. 그러던 중 1920년 10월경 의군부는 이도구(二道溝) 어랑촌(漁朗村) 부근에서 일본군대와 교전하였다. 이 전투에 참여하여 단원 600여 명과 함께 소총 600여 자루, 권총 30여 자루 등으로 무장하고 청산리전투, 특히 어랑촌전투(漁郎村戰鬪)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또한 천수평 전투 이후 어랑촌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기병연대 사령부를 섬멸하기 위해 1920년 10월 22일 9시경부터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붙잡혀 같은 해 11월 8일 팔도구(八道溝)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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