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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鍾春

鍾春

1857. 12. 22 ~ 1931.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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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鍾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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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楊平)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양평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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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민족대동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7)

관련 사건

  • · 대동단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7) 1857년 12월 22일 경기도 양평군(楊平郡) 양동면(楊洞面) 석곡(石谷)의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1919년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에 가입한 후, 같은 해 11월 국내에서 전개된 제2차 만세운동에 33인의 민족대표 중 노인 대표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조직된 조선민족대동단(이하 대동단)은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의 주도로 결성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연계를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대동단은 사회 각계각층의 주요 인사가 망라된 독립운동단체 결성을 도모하며, 이를 위해 먼저 국내에서 대규모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나아가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의 중국 망명과 대동단 본부의 중국 상하이(上海) 이전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국내외 유력 인사를 규합하기 위해 각종 선전물을 제작하고, 부문별 대표가 주도하는 제2차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33인의 민족대표는 청년·노인·부인·종교 분야의 인물들로 구성되었다. 1919년 11월 초 서울 익선동 김익하(金益夏)의 집에서 이신애(李信愛)로부터 대동단의 조직구성과 만세운동에 대한 계획을 알게 되었고, 아울러 대표자로 참여해 달라는 제의를 받자 이에 찬동하여 독립선언서에 노인 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대동단은 독립선언서를 조선총독부에 보낸 후, 음력으로 10월 3일 단군기념일인 11월 25일 중국요리점 장춘관(長春館)에서 김익하(金翼夏) 등 노인대표와 함께 제2회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만세운동을 개시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독립선언서의 인쇄 및 배포, 차량 확보 등에 문제가 생기고 일부 단원의 행방이 확인되지 않는 등 난항이 거듭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1919년 11월 27일 제2차 만세운동을 계획대로 추진하며 장춘관에 집결하여 만세운동 개시에 앞장섰다. 장춘관의 독립선언서 낭독 다음날인 11월 28일 서울 안국동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다시 벌어진 만세운동에 일제 경찰은 크게 당황하며 즉각적인 검거에 나섰다. 이때 붙잡혀서 심문을 받으면서도, “독립선언서는 지당한 것”이라며 독립을 요구하는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노년임에도 불구하고 200여 일간 구금되었다가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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