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在浩
在浩1878. 9. 7 ~ 1933. 9. 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민족대동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8년 9월 7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범재(李範宰)이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학을 익히고, 20대 초반에 사립 법률학교에서 수개월간 수학한 바 있다. 1900년경 관직에 나아가 궁내부(宮內府) 주사(主事)가 되었다. 이후 약 5년간 궁내부에 있으며, 시중(侍中)으로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을 직접 수행하기도 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 1910년대에는 직물업 등의 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919년 3월말 결성된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 대동단)에 가담하였다. 대동단은 전민족의 대단결을 표방하며 결성된 독립운동단체로,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의 주도로 조직되었다. 이들은 사회 각계각층의 주요 인사를 규합하여 부문별·지역별 조직 구성을 계획하고 있었다. 같은 해 5월 대동단의 선전물들이 배포되고, 이로 인해 조직 일부가 일제에 발각되었다. 이에 대동단은 본부를 중국 상하이(上海)로 이전하여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목표 달성을 위해 김가진(金嘉鎭)을 총재로 추대하고, 나아가 의친왕을 중국 상하이로 망명시켜 새로운 구심점으로 삼고자 하였다. 이때 김가진과 의친왕의 상하이 망명 계획에 직접 참여하였다. 1919년 8월 경부터 양정(楊楨)·전협·나창헌(羅昌憲) 등과 교류하며, 대동단의 중요 인사들을 알게 되었다. 이후 독립운동가들을 은신시켜주고, 숙식을 해결해 주는 등 여러모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자택이 대동단의 주요 거점이 되었고, 그 해 9월말 전협이 앞집으로 이사오면서 대동단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이는 대동단 본부를 중국 상하이로 옮기고, 의친왕을 망명시켜 독립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이때 대동단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계하며 제2차 만세시위까지 계획하고 있었다. 10월 10일 의친왕 망명에 앞서 김가진의 상하이 망명이 추진되자 참여해, 서울에서 경기도 일산(一山)까지 김가진을 수행하였다. 김가진의 상하이 망명이 성공하자, 의친왕의 망명도 추진되었다. 대한제국기 궁내부에 있으며 일본 도쿄(東京)까지 의친왕을 수행한 경력으로 직접 의친왕과 대동단을 연결하며 망명계획 추진에 앞장섰다. 그리고 의친왕의 심복인 정운복(鄭雲復)과 전협의 만남을 주선해 대동단과 의친왕이 접촉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11월 9일 전협 등과 의친왕을 직접 만나 망명 계획을 제안하였다. 11월 10일 아침 의친왕 망명이 실행되자, 의친왕과 외투를 갈아입어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게 한 후 일행을 출발시켰다. 그러나 의친왕 일행은 망명 계획을 탐지한 일제 경찰에 의해 포착되어, 11월 11일 중국 안둥역(安東驛)에서 붙잡혔다. 이로 인해 대동단의 전모가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대대적인 일제의 수사 과정에서 붙잡혔다. 이 일로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4년(미결구류일수중 200일 본형 산입)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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