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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在淵

在淵

1866. 9. 24 ~ 1944.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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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在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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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인천(仁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인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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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민족대동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1866년 9월 24일 경기도 인천부(仁川府) 화평리(花平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던 중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뜻을 세웠다. 1919년 5월 인천에서 나창헌(羅昌憲)의 권유에 의해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에 가입하였다. 이때 맡은 주요 임무는 군자금 모집이었다. 1919년 3월 전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조직한 조선민족대동단은 사회 각층을 망라한 전민족적 항일단체를 목표로 조직을 확대해 나갔다. 그러나 1919년 5월 조직의 일부가 탄로 나면서 일제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1919년 10월 총재 김가진(金嘉鎭) 등이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갔다. 1919년 말 국내의 조직이 파괴되는 상황에서, 대동단 본부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임시정부와 연결되어 교통국(交通局) 임시특파원으로 임명되었다. 이 무렵 임시정부는 안창호(安昌浩)의 주도로 국내의 연통제가 와해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국내조직으로 교통국 설치에 주력하고 있었다. 교통국 역시 연통제와 마찬가지로 북부지역에서는 활발하였으나, 남부지역에는 거의 설치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상하이에 머무는 동안 나창헌·김가진 등과 만나면서 대동단의 국내 조직을 세우는 임무를 맡기도 하였다. 1920년 4월 인천으로 귀환 후 전북 익산(益山)·임실(任實郡)·전주(全州)·남원(南原) 지방을 밀행하고 전남 곡성(谷城)·구례(求禮) 등지를 순회하면서, 교통국 및 대동단 지부 설치와 동지 규합에 힘을 쏟았다. 그러다가 1920년 6월 구례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21년 7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장석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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