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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在璇

在璇

1922. 12. 24 ~ 1977.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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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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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蔚珍)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울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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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창유계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922년 12월 24일 경상북도 울진군(蔚珍郡) 울진면(蔚珍面) 읍내리(邑內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일제 말기에는 암본국의(岩本國義)라는 창씨명을 쓰기도 하였다. 1942년 봄 부산 초량상업실수학교(草梁商業實修學校)를 졸업하고 울진금융조합(蔚珍金融組合)에 재직하였다. 1942년경 부산 초량상업실수학교에 재학 중, 울진 읍내 출신의 장봉숙(張鳳塾)과 동거하는 중국인으로부터 민족주의적 교양을 전수받고 점차 민족의식을 키우며 조국의 독립을 열망하게 되었다. 1942년 졸업 후 울진금융조합에 근무하면서 비밀결사 창유계(暢幽契)에 가입하였다. 창유계는 1920년대 울진청년회(蔚珍靑年會)와 울진청년동맹(蔚珍靑年同盟), 1930년대 울진노농공작당(蔚珍勞農工作黨, 혹은 朝鮮獨立工作黨)과 울진적색농민조합(蔚珍赤色農民組合) 등의 활동을 계승하기 위한 비밀결사였다. 1938년 2월 조직된 비밀결사 준향계(準香契)를 바탕으로 1939년 10월 남원수(南源壽)·최효대(崔孝大) 등이 조직한 창유계는 한국의 독립과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락, 민족의식 강화, 임시정부로의 요원 파견 등을 운동 방침으로 정하였다. 1942년 12월부터 울진 읍내에 장봉숙이 설립한 울진상공주식회사(蔚珍商工株式會社) 등지에서 창유계의 계원이며 장봉숙의 아우인 장영인(張永仁) 등에게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김일성이 국내로 조선독립군을 거느리고 들어오면 이에 호응하여 총을 잡고 봉기하자”라고 하면서 독립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장영인 등은 “우리들은 조선 독립을 위해 일어날 각오를 하겠다”는 등의 합의를 하였다. 이리하여 창유계는 1942년 5월 경까지 64회 집회를 개최하였고, 이 집회를 통해 결속을 공고히 하며 회원 확장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울진농민조합(蔚珍農民組合)의 조직과 운영을 통해 이론과 경험이 풍부한 최학소(崔學韶)의 지도를 받기로 하였다. 1943년 3월 19일 ‘창유계 사건’으로 붙잡혔다. 창유계는 운동 방침에 따라 남원수(南源壽)와 장세전(張世銓)을 임시정부에 파견하였는데, 장세전이 출발 전날인 1943년 3월 19일 일제에 발각되어 잡혔고, 남원수는 만주에서 체포되었다. 이후 창유계 회원 102명이 추가로 붙잡혔는데, 그 가운데 40여 명과 함께 구속되었다. 1944년 7월 21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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