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寅錫
寅錫1902. 1. 12 ~ 1942. 6.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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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1) 1902년 1월 12일 경상북도 경주군(慶州郡) 강동면(江東面) 양동리(良洞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여강(驪江)이고, 호는 동천(東天)이며, 이명은 이철(李哲)·이철이(李哲伊)이다. 1915년 양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야마구치현(山口縣) 시모노세키(下關)에서 야경대(夜警隊) 본부의 서기로 일하였다. 1922년 4월 귀국하고, 같은 해 11월 조선총독부 도순사(都巡査)로 임명되어 경주경찰서에서 근무하다가 1923년 7월 사직하였다. 1923년 (음)12월 같은 마을 주민인 보천교(普天敎) 신자 허병훈(許秉勳)에게서 독립운동에 관한 얘기를 듣고 고무되어 중국 상하이(上海)나 간도(間島) 방면으로 가서 독립운동에 참여할 뜻을 품고 자금 마련 방도를 강구하였다. 그러다가 1924년 10월 12일 인근의 영일군(迎日郡, 현 포항시 북구) 기계면(杞溪面) 율산리(栗山里)의 부호 정철검(鄭喆儉)의 집을 찾아가, 노령(露領)의 군정부(軍政府) 소속원임을 자칭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자금으로 10,000원을 내라고 요구하였다. 정철검이 소지한 돈이 없다면서 응하지 않자, 열흘 이내로 준비해둘 것을 명하고 떠났다가 같은 달 24일 다시 방문하였다. 그러나 정철검이 미리 피신해 부재중이어서 돈을 받지 못하였고, 집사 서기원(徐起源)의 밀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4년 12월 1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및 형법 위반로 징역 8월(미결구류일수 6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925년 3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다가, 같은 해 9월 풀려났다. 이후 만주로 건너가 하얼빈(哈爾濱) 방면에서 독립운동을 지속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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