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應洙
應洙1879. 10. 7 ~ 195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용의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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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79년 (음)10월 7일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황간면(黃澗面) 용길(龍吉)에서 태어났다. 부친 이건석(李建奭)은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 반대투쟁으로 투옥되었다가, 1906년 단식투쟁으로 자결하였다. 계속된 일제 감시를 피해 1918년 2월 가족을 데리고 경북 김천군(金泉郡) 봉산면(鳳山面) 예지리(禮智里)로 옮겨와 살았다. 1920년 9월 김천 자택에서 신태식(申泰植)·김찬규(金燦奎)와 함께 비밀결사 용의단(勇義團)을 결성하였다. 김찬규가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김응섭(金應燮)으로부터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아 줄 것을 요청받고, 이상희(李象羲) 총재 명의의 위임장과 암호문, 권총 등을 수령하여 국내로 들어와 동단을 결성한 것으로 독립운동 단체를 후원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용의단에서 경북단장 신태식, 경남단장 김찬규에 이어 경북지역 총무를 맡았고, 그 외 군무·군량·재무 등의 부서를 두고 지방의 신망 있는 인사들과 역할을 분담하였다. 경북지역 총무국장으로 단의 활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하였다. 1921년 2월부터 1922년 4월경 사이 김찬규·경북 재무총장 김병동(金秉東) 등과 함께 독립운동자금 모집을 계획하고, 예천(醴泉) 출신 손영기(孫永箕)를 가입시켰다. 군자금 모집은 주로 서로군정서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명의로 된 「군자금사령서」와 「경고문」, 「사형선고서」 등을 우편으로 발송하는 방법으로 추진되었는데, 일제 단속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군자금사령서」 발송은 이대기·김종국과 함께 담당하였다. 1922년 1월경 이후 경북 예천군 손용준(孫龍俊) 집에 모여 독립운동자금 모집 방안을 논의하고 경상도 부호들을 대상으로 사령서를 발송하였다. 같은 해 4월에는 경북 안동군과영덕군의 박재인(朴載寅)·박세찬(朴世燦) 등에게 길림 군정서 명의의 문건을 우편으로 송부하여 독립 자금제공을 종용하였으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또한 1922년 5월경 김천의 정훈용(鄭薰瑢)에게도 같은 문건을 보냈다. 1922년 10월 이대기·이종국 등과 각지의 부호를 물색하였고, 11월 경북 영일군(迎日郡)의 이원기(李源璣)·이원경(李源慶), 영천군(永川郡)의 권중면(權重沔), 군위군(軍威郡) 의 홍회근(洪晦根)·홍정수(洪貞修), 창녕군(昌寧郡)의 신연식(辛延植) 등에게 독립자금요구서, 시국경고문, 길림군정서의 사형선고서 등을 송부하였다. 그러면서 이 요구에 불응할 경우 생명에 위해를 가한다고 하였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1922년 11월 28일 대구에서 붙잡혔고, 1923년 12월 2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중 2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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