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善卿
善卿1902. 5. 25 ~ 1921. 4.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2)
관련 사건
- · 구국민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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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2) 1902년 5월 25일 경기도 수원면(水原面) 산루리(山樓里, 현 수원시 팔달구 중동)에서 아버지 이학구(李學九)의 2남 2녀 가운데 차녀로 태어났다. 본관은 광주(廣州)이며, 출생 당시 이름은 이애기(李愛基)였고 1916년 이선경(李善卿)으로 개명하였다. 언니 이현경(李賢卿)은 일본에서 유학하였고 귀국 후 동아일보 기자를 지냈으며 여성동우회, 근우회 등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수원공립보통학교(현 신풍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18년 4월 30일 서울의 사립 숙명여학교에 입학하였다. 2학년 때인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3월 5일 서울지역 학생들의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붙잡혀 3월 20일 무죄로 풀려났다. 같은 해 9월 1일 관립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하였다. 3학년 재학 중 수원·서울간 통학 학생들로 구성된 비밀결사 조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20년 6월 7일 수원 서호(西湖)에서 수원삼일여학교 교사 차인재(車仁載)의 소개로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2학년 임순남(林順男)·최문순(崔文順), 휘문고보 4학년 박선태(朴善泰), 경성기독청년학관 학생 이득수(李得洙), 등과 함께 구국민단(救國民團)을 조직하였다. 1920년 6월 20일 구국민단 조직 개편 시 구제부장이 되어 총장 박선태, 부총장 이득수, 서무부장 임순남, 재무부장 최문순, 교제부장 차인재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이들은 한국을 일제의 통치하에서 이탈하게 하여 독립 국가를 조직할 것과 독립운동을 하다가 수감되어 있는 사람의 유족을 구조할 것 등을 목표로 세우고 매주 금요일마다 수원 읍내에 있는 삼일여학교에서 모임을 가졌다. 『대한민보(大韓民報)』 배포를 담당할 것을 서약하고, 기회를 보아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간호부가 되어 후일 독립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독립운동에 이바지할 것을 약속하였다. 임시정부와 연락하기 위해 1920년 8월 9일 수원을 출발해 상하이로 향하다가 서울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재판에 회부되어 1921년 4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박선태와 이득수는 징역 2년을 받았고, 임순남·최문순과 함께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미결수로 8개월 여 옥고를 겪다가 풀려나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일제의 혹독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풀려난 지 9일 만인 1921년 4월 21일 수원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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