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錫允
錫允1899. 7. 21 ~ 1986. 10. 1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애국단 강원도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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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899년 7월 21일 충청북도 진천군(鎭川郡) 백곡면(栢谷面) 상봉리(上峰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이석구(李錫九)·이영준(李永俊)·이춘곡(李春谷) 등을 사용하였다. 출생과 성장에 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지만, 출가하여 경남 양산의 통도사(通度寺), 함남 안변의 석왕사(釋王寺), 경기 안성의 청룡사(靑龍寺) 등지에서 승려 생활을 한 것이 확인된다. 1919년 4월 불교계의 독립운동가 신상완(申尙玩)을 만난 후 사찰 등을 돌며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나서게 되었다. 이 무렵 불교계는 중앙학림(中央學林) 출신 신상완·김상헌(金祥憲) 등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긴밀히 연계하며, 승려의용군 조직과 독립운동 자금 모집 등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들은 국내에 명망있는 승려들을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시키고, 승려들을 규합하여 대한승려연합회를 결성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 강원도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강원도 일대 사찰을 대상으로 자금 모집에 나섰다. 이때 자신은 강원 고성군(현 양양군)에 있는 건봉사(乾鳳寺)에 파견되어 독립운동 자금을 수령하였다. 이러한 활동 중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12월 8일 경성지방법원 수원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으나,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다음 해 1920년 1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벌금 30원을 받았다. 그러나 1920년 4월 다시 붙잡혀 1920년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에도 독립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고 다시 활동을 재개하였다. 1922년 5월 8일에 남태희(南泰熙)와 함께 충남 대전군(大田郡, 현 대전광역시)의 정순학(鄭淳學)을 찾아가 군자금을 건네받고, 이를 임시정부에 송부하였다. 거사를 치른 직후 남태희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자 서울로 피신하여 은거하였으나 5월 15일 붙잡혔다. 그날 밤 경부선 기차를 타고 끌려가던 중 조치원 인근에서 달리는 기차 창문 밖으로 탈출하였다. 이에 놀란 일제 경찰은 대전·청주 일대에 비상을 걸어 대대적 검거에 나섰다. 그리고 청주에서 다시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황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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