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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錫麟

錫

1914. 2. 24 ~ 1999.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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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錫麟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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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주(楊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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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어학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7)

관련 사건

  • · 상록회 사건
  • · 조선어학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7) 1914년 2월 24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노해면(蘆海面) 쌍문리(雙門里, 현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서 태어났다. 양주공립보통학교(楊州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경성실업전수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중퇴하였다. 이후 천막가게 보조를 생업으로 하던 중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 기관지인 『한글』을 접하고 조선어학회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어 1936년 가입하였다. 조선어학회에서 서기의 업무를 맡아 『한글』의 원고 수집과 편집·교정·발송 등을 맡아 하였다. 1938년에는 이른바 ‘상록회(常綠會) 사건’에 연루되어 붙잡혔다. 상록회는 춘천고등보통학교(春川高等普通學校) 학생들이 ‘조선 독립의 실현’을 목적으로 조직한 단체였다. 당시 상록회 회원들은 독서회를 운영하여 민족주의 사상을 선전했다는 혐의로 붙잡혔는데, 조선어학회 회원이었던 신영철(申瑛澈)도 상록회의 독서회를 주도하였다는 명목으로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다. 신영철의 집안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편지가 발견되면서 연루되어 3개월간 옥고를 겪었다. 1939년 1월 방면된 이후에는 조선어학회의 『큰사전』 편찬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던 중 1942년 10월 1일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1년 여간 옥고를 겪다 1943년 9월 18일 풀려났다. 광복 이후 고등학교 교단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한글학회 회원으로 평생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서일수⋮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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