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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復遠

復遠

1902. 2. 17 ~ 1928.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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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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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禮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예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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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흑기연맹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흑기연맹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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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2) 1902년 2월 17일 충청남도 예산군(禮山郡) 삽교면(揷橋面) 이리(二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이철(李哲)을 사용하였다. 1924년 무렵에는 서울 봉익동(鳳翼洞)에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흑기연맹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1924년 3월 서울 자신의 집에서 서천순(徐千淳)·서정기(徐廷夔)·신영우(申榮雨) 등과 함께 회합하였다. 이들은 그 해 12월부터 서울과 충주의 유지들과 함께 회합을 갖고 아나키즘 사상을 연구하기로 결의하였다. 아울러 1924년 12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일명 불령사사건(不逞社事件)에 연루되어 검속된 바 있는 홍진유(洪鎭裕)·서상경(徐相庚) 등 흑우회(黑友會) 동지들을 만나 국내 아나키스트 조직의 재건을 시도하였다. 홍진유 등은 1923년 9월 일왕 폭살계획을 추진하던 박열(朴烈)의 폭탄유입계획에 연루되었다가 1924년 6월 방면되어 귀국한 상태였다. 평소 일제 식민통치에 강한 저항심을 갖고 수문사(修文社)에 자주 방문하였다. 그러던 중 신영우(申榮雨)가 아나키즘 연구단체를 만들고자 하자 이에 공감하여 곧 이들과 함께 조직건설 계획에 동조하였다. 그 결과 1925년 3월경 서울 낙원동(樂園洞) 수문사에서 홍진유를 비롯한 서상경·신영우 등 도쿄 흑우회 회원들과 서천순·서정기·곽윤모(郭胤模)(이명 (郭撤)) 등 충주지역 유지들, 그리고 이창식(李昌植) 등 진남포 출신 인사 등 10여 명과 함께 흑기연맹(黑旗聯盟)을 결성하였다. 이들은 흑기연맹 창립 취지서에서 “자아의 확충을 저해하며 만인의 행복을 유린하는 모든 불합리한 제도를 근본적으로 파괴하고 권력과 결합된 조직을 철저히 배척한다”고 밝혔다. 즉 정부와 국가·관습 등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사회제도를 타파하고 개인의 절대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를 건설할 것과 중앙집권적 조직 대신 노동자·농민 스스로의 자율적 의사에 따른 자유연합 조직의 결성을 주창하였다. 이 취지서를 갖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시대일보』 등에 게재하려고 하였다. 이들은 토의를 거듭한 끝에 발기준비회를 구성해 서울 정동(貞洞)에서 1925년 5월 3일 창립총회와 함께 전(全) 조선아나키스트대회를 열기로 계획하였다. 또 향후 기관지를 발행하기로 하고, 이에 필요한 기금을 모으기로 하였다. 그러나 1925년 4월 25일 일제 경찰은 흑기연맹을 “체제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무정부주의자들의 비밀결사”로 규정하고 흑기연맹 회원 전원을 체포하였다. 이때 함께 붙잡혔고, 3개월 후 8월 25일 변호사 이인(李仁)과 김병로(金炳魯)·김용무(金用茂) 등 3명이 무료 변론하였다. 1925년 11월 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6년 11월 17일 만기 출옥하였다. 하지만 감옥에서 극도의 신경쇠약과 늑막염에 시달린 후유증으로 인해 1928년 6월 10일 27세로 서울 봉익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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