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起雄
起雄1919. 12. 16 ~ 2001. 4.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8)
관련 사건
- · 민족의식 고취(시국담유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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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8) 1919년 12월 16일 충청남도 서산군 서산읍(瑞山邑) 읍내리(邑內里, 현 서산시 읍내동)의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슬하에서 자랐다. 1934년 서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승합자동차 차장, 사립학교 교사 등을 했다. 1938년 봄부터 기독교를 믿기 시작하여 마을의 서산성결교회를 다녔다. 교목인 정재학(鄭在學)의 민족의식 고취(시국담 유포)에 감화되어 일본의 패망을 확신하고, 한국의 독립이 실현될 것이라는 믿음을 설파하는 데 앞장섰다. 1943년 4월 성결교회가 경영하는 경성신학교에 입학하여 교회간부로 활약하고자 하였으나, 같은 해 5월 학교가 폐쇄됨에 따라 귀향하였다. 귀향 후 1943년 7월 경 정재학의 집에서 마을 주민과 시국을 논하던 중 “미국, 영국 양국은 철과 기계 제작이 발달한 나라로 이번 태평양전쟁에서 미국, 영국이 틀림없이 승리할 것이다. 미국, 영국이 승리하면 조선도 독립하고, 우리 교회도 발전하여 기독교 신자가 중요한 위치에 오른다”고 하면서, 한국 독립을 확신하고 기독교 신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8월 18일 오후 8시경 정재학의 집에서 마을 주민 4명에게 “일본의 말 사육장에서 인도사람이 군용 말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심상치 않은 일본 내부의 분위기를 전달하였다. 이른바 ‘불온언동(不穩言動)’을 했다는 이유로 정재학과 함께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1944년 3월 12일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청에서 이른바 육해군형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박경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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