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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基烈

基

1905. 11. 15 ~ 1980.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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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基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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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옥구(沃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옥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3)

관련 사건

  • · 옥구농민조합 서수지회 소작투쟁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3) 1905년 11월 15일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현 군산시) 서수면(瑞穗面) 서수리(瑞穗里)에서 태어났다. 1927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27년 10월 2일 옥구군 서수면에 장태성(張台成)·박상호(朴相浩)·김영준(金寧俊) 등에 의해 옥구농민조합(沃溝農民組合) 서수지회(瑞穗支會)가 결성되었다. 일본인 지주의 횡포에 대항하고, 소작인의 권익을 보호할 목적으로 조직한 것이다. 이들은 신문관(申文官)·정영운(鄭永云)·최은엽(崔銀燁) 등과 더불어 회원 모집에 노력하였다. 이때 다른 소작인들과 함께 조합에 가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회원수가 약 200명에 달했다. 1927년 11월경 서수면 서수리 소재 주식회사 이엽사농장(二葉社農場)이 소작농민들에 대하여 수확량의 75%에 달하는 과도한 소작료를 요구하였다. 같은 해 11월 20일 밤 장태성과 김행규(金杏奎) 등은 농장의 일본인 지배인 제등신일(齊藤信一)을 방문하여 소작료를 45%로 감액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11월 25일 일본 경찰은 오히려 지회장 장태성이 지배인을 협박했다는 이유로 붙잡아 서수경찰관주재소에 구금하였다. 저녁 무렵 군산경찰서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서수면 임피(臨陂)경찰관주재소에 대기하고 있던 장태성이 이진섭(李鎭燮)에게 자신이 체포되어 끌려가고 있음을 알렸다. 이진섭은 곧바로 이 사실을 박상호를 비롯한 조합원들에게 전하였다. 그러자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밤 9시경 임피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건물을 파괴하고, 경찰을 구타하여 장태성을 구출하였다. 또 돌아가는 도중 서수경찰관주재소에 간부 박상호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밤 10시경 서수경찰관주재소에 가서 투석을 하며 박상호를 구출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 이후 출동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8년 2월 29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이른바 구금자 탈취, 소요죄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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