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圭達
圭達1852. 1. 1 ~ 1930. 7.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0)
관련 사건
- · 안동군 풍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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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0) 1852년 1월 1일 경상북도 봉화군(奉化郡) 소천면(小川面) 분천리(汾川里)에서 태어났다. 이후 안동군(安東郡) 풍북면(豊北面) 만운리(晩雲里)로 이주하였다. 1919년 3월 24일 안동군 풍산면(豐山面) 풍산시장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과 함께 학생들의 만세운동이 시작되자, 만세운동 소식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경술국치 이후 유림(儒林)과 개신교인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온 안동 역시 3월 13일 이상동(李相東)의 단독 시위와 3월 16일 예안면(禮安面)의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군 전역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풍산면의 시위를 주도한 전성철(全聖哲)과 김후성(金後性)은 3월 18일 2천여 명의 군민들이 군청과 주재소 등 일제 식민통치기관들을 공격했던 안동 읍내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후 만세시위를 풍산면에서도 계속하기로 결의하여 거사일을 3월 24일로 정하고, 격문과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이때 전성철·김후성과 함께 만세시위 계획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 당일인 3월 24일 오후 3시 20분 풍산시장에서 개신교인과 동화학교(東華學校) 학생 등 30여 명으로 구성된 시위대와 함께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쳤다. 만세시위 대열은 오후 6시까지 시장 일대를 행진하며 만세를 외쳤는데, 군 전역에서 계속되는 만세시위로 인해 안동 전역을 삼엄하게 감시하던 일제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주도인물들을 붙잡았다. 이때 전성철·김후성과 함께 시위 주도인물로 지목되어 붙잡힌 이후 형사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가 같은 해 5월 6일 항소를 취하하면서 판결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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