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찬복
尹贊福1868. 1. 5 ~ 1946. 6. 1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68년 1월 5일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자산면(慈山面) 기탄리(岐灘里)에서 태어났다. 기독교 전도사로 활동하였다. 50대 초반의 나이로 비밀리에 여성독립운동단체를 조직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 군자금 조달 등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옥고를 겪었다. 고향의 사인리(舍人里)교회 전도사로 시무하던 중 1919년 (음)8월 평양(平壤)의 예수교신학교 기숙사에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총무 박승명(朴承明)의 권유를 받고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하였다. 동지를 규합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비밀결사단체를 조직하기로 하였다. 1919년 (음)10월 순천군 제현면(濟賢面) 문창리(文昌里)에 있는 기독교계 여학교에서 14명의 기독교 여성들이 모여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大韓國民會) (婦人鄕村會)를 조직하고 임원을 선임하였다. 이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의 회장을 맡았고 최복길(崔福吉)·정찬성(鄭燦成)이 회계를 담당하였다. 이들은 기독교여성 수십 명을 회원으로 모집하고 회원으로부터 회비와 의연금을 모금하였다.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할 것을 목적으로 회원들로부터 4원씩 모금한 후, 그 중 1원은 향촌회의 경비로 충당하고 나머지는 임시정부에 보낼 독립운동자금으로 적립하였다. 이렇게 모금한 160원을 1920년 (음)3월 23일 평양부 경창리(景昌里) 예수교신학교(성경학당) 기숙사에서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 임원 한영신(韓永信)의 소개를 받아 임시정부 요원 차경신(車敬信)에게 전달하였다.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중 1921년 2월 27일 일제 경찰에 대한국민회 부인향촌회의 조직과 활동 내용이 발각되어 동지들이 모두 붙잡혔다. 1921년 7월 2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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