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우식
尹雨植1909. 10. 19 ~ 1934. 10. 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예천무명당
- · 예천적색농민조합
포상 정보
- · 애족장(200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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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4) 1909년 10월 19일 경상북도 예천군(禮泉郡) 지보면(知保面) 신풍리(新豐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이명은 윤병근(尹秉根)이다. 예천공립보통학교 5학년 때 경성제2고등보통학교(京城第二高等普通學校, 현 경복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2학년 때 항일운동으로 중퇴하고 귀향하였다. 1920년대는 전국적으로 농민운동의 불길이 거세던 시기였다. 소작인들의 소작쟁의 수준을 넘어서 농민조합을 결성하고 농민의 권익을 위해 투쟁을 벌이는 지역이 많이 생겨났다. 당시 예천은 전형적인 농촌으로 90% 이상이 농민이었지만 자작농의 비율은 줄어들고 소작농이 늘어나 농민의 처지는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2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농민운동을 해 오다가 1932년 한일청(韓一淸) 등과 함께 예천적색농민조합(醴泉赤色農民組合)을 조직하였다. 일제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지속적인 비합법 투쟁을 전개하였으나 영주(榮州)·봉화(奉化) 등지에서 결사사건이 발각되자, 농민조합을 해산하였다. 이후 한일청·박철호(朴鎬哲)·김기석(金己石) 등과 함께 한국의 독립과 신사회 건설을 목적으로 예천무명당(醴泉無名黨)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무명당 산하에 노동자 그룹, 실업자 그룹, 교원(敎員) 그룹, 봉급자 그룹, 언론인 그룹 등의 결성을 추진하면서 농민뿐만 아니라 각계 각층의 동지를 규합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보급하는데 주력하였다. 이때 예천군 지보면의 조직 책임을 맡아 수행하였다. 윤태혁(尹泰赫)·윤성복(尹成福) 등의 동지들을 규합하였으며 야학회와 소비조합의 설치를 도모하였다. 또한 지보면의 농촌진흥회를 이용하여 이립금(利立金)을 만들어 활동 자금으로 삼았다. 그러나 1934년 초순부터 예천무명당 사건으로 350여 명이 붙잡혔고, 그 중 11명의 주동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사건 관련자들은 1935년 5월 공판에 회부되었으나 혹독한 조사의 후유증으로 공판에 회부되기 전인 1934년 10월 4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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