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기
尹相起1889. 5. 3 ~ 1939. 12.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건국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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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7) 1889년 5월 3일 충청남도 논산군(論山郡) 광석면(光石面) 천동리(泉洞里)에서 태어났다. 1920년부터 대한건국단(大韓建國團)을 조직하여 민족의식 고취, 독립운동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1월 무렵 충남에서 윤태병(尹太炳)·백남식(白南植) 등과 함께 자택에서 한국의 독립사상 고취와 독립운동 자금 모금 활동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대한건국단을 조직하였다. 이후 김세진(金世鎭)·이상설(李商雪)·조병채(趙炳彩) 등이 참여하였다. 그 가운데 윤태병이 대한건국단 단장으로 활동하였다. 대한건국단 단원 6명 모두가 충남 논산, 충북 청주(淸州)·영동(永同) 출신이었다. 1920년 3월 6일 윤태병·이상설·조병채 등과 함께 전라북도 금산군(錦山郡) 금산면(錦山面, 현 충남 금산군 금성면) 하류리(下柳里)에 사는 부호 송석기(宋錫驥)를 찾아 현금 360원과 건국단 군자금으로 1만 원을 제공하겠다는 서약서를 받아냈다. 같은 날 저녁 송석기의 이웃에 사는 윤상응(尹相應)을 대상으로 현금 200원과 건국단 군자금으로 5,000원을 제공하겠다는 서약서을 받았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던 1921년 4월 중순 서울 동대문 소재 여관에서 한국 독립과 배일사상을 고취하는 내용의 대한건국단 취지서를 가지고 있던 이상설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면서, 조직이 드러나 대한건국단 단원 전원이 붙잡히게 되었다. 경기도경찰부에 붙잡혔고, 다른 단원들은 충북·경남 등지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전국 각지에서 붙잡힌 대한건국단원들은 일제 경찰의 강압적 조사에도 불구하고 활동 내용에 대한 진술을 거부하였다. 1920년 5월 31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1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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