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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章守

章守

1897. 12. 19 ~ 1960. 3. 14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章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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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密陽)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밀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밀양장터 만세시위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97년 12월 19일 경상남도 밀양군(密陽郡) 부내면(府內面) 내일동(內一洞)에서 태어나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1919년 고종의 장례에 참례하기 위해 서울을 다녀온 윤치형(尹致衡)과 윤세주(尹世胄)가 3월 1일 탑골공원에서의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시위 상황을 선배지사 전홍표(全鴻杓)에게 보고한 후 밀양에서도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제의하는 연락을 해오니 즉시 호응하였다. 이어서 그 두 사람 및 김병환(金鉼煥) 등 10명의 동지들과 3월 11일 및 12일에 연달아 정동찬(丁銅燦)의 집에 모여서, 장날인 13일에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고 연판첩(連判帖)에 압인(押印)하였다. 또한 ‘대한독립만세’를 써넣어 만든 대기(大旗)와 소형 태극기 수십 개 및 경고문을 같이 만들면서 은밀히 거사를 준비하였다. 3월 13일 오후 1시경 밀양 장터 앞에서 윤세주의 독립선언서 낭독이 있은 후 11명 시위주동자의 일원이 되어, 김병환의 집에 보관된 대형 깃발을 들고 나와 앞세워 휘두르며 약 2천 명 가량의 행진 대열을 이끌었다. 그러다 시위현장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 끌려가 고문당하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부산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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