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榮汝
榮汝1879 ~ 1919. 3. 3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관련 사건
- · 포천군 신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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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4) 경기도 포천군(抱川郡) 신북면(新北面) 계류리(溪流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79년생으로 추정된다. 향리의 대표적인 한학자로 일제에 의한 국권상실 이후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서당을 설립하여 이를 통해 일제의 식민교육에 맞서 후학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그러던 중 1919년 3월 1일 손병희(孫秉熙) 등 민족대표 33인이 주도가 되어 서울에서 거족적인 독립만세 운동이 전개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호응하여 포천군 관내의 만세시위를 통한 독립운동을 위해 삼성당리(三星堂里) 구장(區長) 서성달(徐成達, 서상연[(徐相蓮)]), 심곡리(深谷里) 구장 이치상(李致相), 고일리(古日里) 구장 성성문(成聖文), 심곡리 거주 윤충렬(尹忠烈) 등과 함께 수차례에 걸쳐 비밀회합을 가졌다. 다른 한편으로는 서울 천도교(天道敎) 본부로 사람을 보내어 상호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만세운동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하였다. 3월 30일 300여 명을 동원하여 심곡리의 윤충렬을 기수로 삼아 태극기를 들고 포천읍을 향하여 시위행진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였다. 이를 탐지하고 출동한 일본 경찰과 신북면 가채리(加采里)에서 충돌하게 되었다. 출동한 포천헌병분견대 소속 헌병경찰은 모인 군민들에게 무차별 발포를 하여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평화적 시위를 하던 군중은 투석과 무력투쟁으로 저항하였다. 그 과정에서 시위를 하던 군중 수십여 명이 사망하였는데, 총탄에 흉부와 하복부를 맞고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동지인 성성문은 두부(頭部) 관통으로 일주일 만에 사망하였고, 이치상은 견부(肩部) 관통상으로 10개월 만에 사망하였고, 서성달은 복부관통상으로 수년간 치료하다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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