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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淳德

淳德

1886 ~ 1919.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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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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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성천(成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성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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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성천군 성천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평안남도 성천군(成川郡) 쌍룡면(雙龍面) 풍평동(豊坪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6년생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4일 평안남도 성천군 일대에서 벌어진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희생되었다. 평안남도 성천군의 만세운동은 천도교도가 중심이 되어 준비되었다. 천도교 성천교구장(成川敎區長) 이돈하(李燉夏)는 2월 하순 평양에서 열린 대교구장회의(大敎區長會議)에 참석해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2월 28일 밤 성천으로 돌아왔다. 이후 신도들과 의논해 3월 4일 오전 11시에 성천군 내 천도교도들을 모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각 지역으로 사람을 보내 만세시위에 참여할 사람을 규합하였다. 이때 성천군 쌍룡면 일대는 박치상(朴緻祥)이 만세시위 소식을 전달하였다. 3월 4일 오전 10시경 미리 소식을 듣고 성천면 읍내 천도교당 앞으로 집결한 수 백여 명의 천도교도들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먼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이를 곳곳에 배포한 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시작하였다. 만세시위가 진행되면서 1,000여 명으로 증가한 시위대와 함께 곤봉·낫·도끼 등으로 무장하고 성천헌병분대를 공격하였다. 시위대는 내부로 들어가 유리창과 집기를 부수고, 안에 있던 헌병분대장을 구타하였다. 그러나 무차별적인 헌병들의 총격을 가해지면서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헌병의 총격으로 약 20~30명이 사망하였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결국 일제 헌병의 총격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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