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守丁
守丁1887. 11. 15 ~ 1977. 12.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통천군 순령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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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7년 11월 15일 강원도 통천군(通川郡) 순령면(順嶺面, 현 강원도 통천군 통천읍) 상고저리(上庫底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이수정(李受定)을 썼다. 이발사(理髮職)로 일하였으며, 1919년 4월 6일 통천군 순령면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통천군에서는 1919년 4월 4일 통천면에서 만세시위가 있었고, 5일부터 7일까지 순령면 고저리에서 지속적으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4월 5일 순령면 만세시위는 노동자들의 주도로 일어났다. 순령면 고저리는 항구 지역으로 이전부터 상업이 발달한 곳이었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경제적 침탈로 많은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있었다. 4월 5일 밤 청년과 노동자 10여 명이 ‘독립만세’를 외치자, 서당 학생들이 만세시위에 합류하였다. 그러자 고저리경찰관주재소 일제 경찰들이 출동해 주도자를 체포하고 만세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4월 6일에는 순령면 고저리에서 대규모 인원이 참여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전날의 만세시위 소식을 접하고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 크게 공감하였다. 그리고 전국의 만세운동 소식을 접할 때마다 항상 조국의 독립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동참하여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때 같은 마을에 사는 임낙규(林洛奎)·한창수(韓昌洙)·최일성(崔日成)·서병익(徐丙翼) 등도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낮부터 시작되어 저녁 8시 1,3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의 선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하였다. 그리고 시위대와 함께 면사무소·주재소·우편소 등을 파괴하였고, 일본인 주택과 중국인 상점도 공격하였다. 그러자 주재소 경찰들이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여 부상자가 발생하였고,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7월 1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3년(미결구류일수 30일 본형 삽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하였고, 그 해 8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다시 징역 2년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며 “민족자결이 반포된 것은 천시(天時)이며, 우리 민족은 정의로써 조국의 독립을 축하하며 만세운동을 펼쳤는데 일본은 잔혹하게 폭력으로 대응하였다”고 비판하였지만, 같은 해 10월 1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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