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洙仁
洙仁1880. 5. 11 ~ 1963. 1.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파리장서 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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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5) 1880년 5월 11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대가면(大家面) 용흥리(龍興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성산(星山)이고, 자는 자유(子裕)이며, 호는 침산(枕山)이다. 이명은 이수석(李洙錫)이다. 한말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과 한계(韓溪) 이승희(李承熙)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8년 스승 이승희를 모시고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하였다가, 독립운동자금 모집을 위해 국내로 다시 돌아와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1916년 이승희가 중국 펑텐(奉天)에서 사망하고 성주로 반장(返葬)할 때 참여하였다. 1919년에는 유림들의 파리장서(巴里長書) 운동에 참여하였다. ‘제1차 유림단(儒林團) 의거’로 불리는 이 운동은 1919년 3월 파리 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는 일명 「파리장서」를 보내 한국민의 독립의지를 표명하고자 하였다. 곽종석과 김복한(金福漢)을 중심으로 한 호서와 영남의 유림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하였고, 문안 작성은 곽종석의 동료인 장석영(張錫英)과 제자 김창숙(金昌淑)·김황(金榥) 등이 맡았다. 그래서 일제의 한국 강점에 대한 부당함을 폭로하고,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내용의 청원서가 작성되었다. 이에 137명의 유림들이 장서에 연서할 때, 서명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렸다. 또한 다른 유림들에게 청원서에 서명할 것을 권유하고 대서(代書)를 부탁하는 한편, 청원서를 다수 작성하여 다른 지방의 유림들에게도 배포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청원서 전달은 문안 작성에 참여한 김창숙이 맡아 중국 상하이(上海)로 가져갔으며, 이후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 대표로 파리에 파견되어 있던 김규식(金奎植)에게 우송하여 강화회의의 의장에게 제출하게 되었다. 「파리장서」는 한문과 영문으로도 인쇄하여 각국의 대표와 공사관으로 발송되었으며, 국내 향교에도 한문본이 우송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비밀리에 진행되었던 파리장서 운동은 청원서 서명자 가운데 송회근(宋晦根)이 1919년 4월 2일 경북 성주의 만세시위로 체포되면서 발각되었다. 이후 파리장서에 서명한 유림과 관련된 다수의 인물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그해 7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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