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壽安
壽安1859. 12. 2 ~ 1929. 5.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관련 사건
- · 제1차 유림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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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5) 1859년 12월 2일 경상남도 진주군(晋州郡) 금산면(琴山面) 가방리(加芳里)의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한학을 수학하고, 지역 사회에서 유림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유림들이 국제사회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한 「독립청원서」에 서명하였다. 1919년 3월 1일부터 서울을 시작으로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만세운동의 현장에서는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천명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다. 이 선언문의 작성 주체는 종교계 인사들로 구성된 민족대표 33인으로, 유교계의 인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것은 당시 유림들에게 매우 부끄럽고 충격적인 문제였다. 프랑스의 파리에서는 1919년 5월부터 파리강화회의의 개최가 예정되어 있었다. 유림은 이 회의에 독립을 희망하는 한국인들의 의사를 직접 전달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유림들의 총의를 모아 일제의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와 광무황제 폐위 및 한국 주권의 찬탈 과정을 폭로하고, 한국 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주장하는 「독립청원서」를 작성하였다. 총 2,674자의 한자(漢字)로 이루어진 이 문서는 「파리장서(巴里長書)」라고도 불린다. 대표로 선정된 김창숙(金昌淑)이 직접 파리로 가서 「독립청원서」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상하이(上海)에 도착한 김창숙이 직접 파리로 가지 못하게 되자, 「독립청원서」를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의 대표로 이미 파리에 파견되어 있던 김규식(金奎植)에게 송달하였고, 국내의 각 향교에도 사본을 우송하였다. 이와 같은 독립청원운동의 주도 세력은 김복한(金福漢)을 중심으로 한 호서유림과 곽종석(郭鍾錫)을 중심으로 한 영남유림이었다. 곽종석은 스승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학맥을 중심으로 제자들을 영남 각 지역으로 보내 참여를 독려하였다. 1910년 한국병합(韓國倂合) 이후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며 한국의 독립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가, 「독립청원서」의 내용을 전달받았다. 이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같은 지역의 하겸진(河謙鎭)·하봉수(河鳳壽) 등과 함께 「독립청원서」에 137명 중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 하지만 유림의 독립청원운동은 1919년 4월 중순 일제에게 발각되었다. 서명자로 참여한 송회근(宋晦根)이 4월 2일 경북 성주(星州)의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4월 12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조사 과정에서 「파리장서」 사건이 발각되었다. 이후 관련된 인사들에 대한 일본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 과정에서 곽종석·윤주하 등과 함께 붙잡혔다. 하지만 일제와 조선총독부는 사회적 영향력이 큰 유림의 처벌에 따른 파장을 우려하였다. 그래서 곽종석·김복한 등을 제외한 다른 관련자들과 더불어 미결수로 수개월 간 옥고를 겪은 뒤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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