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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壽洛

壽洛

1899. 8. 22 ~ 1981.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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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壽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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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울산(蔚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울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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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울산군 온양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99년 8월 22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온양면(溫陽面, 현 울산광역시 온양읍) 덕신리(德新里)에서 태어났다. 한학자 이용중(李龍中)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8일 온양면 남창리(南倉里)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온양면의 만세운동은 광무황제의 인산(因山)에 참가했다가 서울의 만세운동을 본 후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한 이재락(李在洛)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인근에 거주하는 이수일(李樹一)은 서울 소식을 듣기 위해 이재락을 방문해 선언서를 보고 만세시위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수일은 그와 동문수학하던 이희계(李希季)·이쾌덕(李快德)·이용락(李龍洛) 등과 함께 만세시위 계획을 논의해 남창시장의 장날인 4월 8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때마침 석천리의 이쾌경(李快慶)이 찾아와 동참하게 되었다. 이들과 함께 4월 7일 이용락의 집에서 만세시위를 위한 구체적인 준비에 착수하고, 참여자들에게 나눠줄 태극기를 밤새도록 제작하였다. 4월 8일 아침 이쾌덕·이희계·이용락·이쾌경과 함께 태극기를 숨기로 남창시장에 도착한 이후, 만세시위를 시작할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 오후 4시경 장을 본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주도자들과 더불어 시장의 중앙으로 나와, 태극기를 배포하며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독립을 위해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자, 이에 공감한 수 백명의 주민들이 호응해 ‘대한독립만세’를 따라 외쳤다. 이쾌덕 등과 함께 시위대를 지휘해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남창시장의 곳곳을 행진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를 목격한 남창경찰관주재소 경찰들이 출동해 공포탄을 발사하며 주도자들을 체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쾌덕·이회계·이쾌경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때 체포를 피한 이용락은 포목상인 윤두찬(尹斗讚)에게 광목을 얻어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만들었고, 고기룡(高基龍) 이를 받아들고 이어서 만세시위를 지휘하였다. 이 일로 1919년 4월 24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고, 같은 해 5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다시 징역 6월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6월 28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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