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鳳性
鳳性1871. 6. 9 ~ 1921. 10. 2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홍성군 금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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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7) 1871년 6월 9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화양리(華陽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일 금마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고초를 겪었다. 금마면에서의 만세시위는 1919년 4월 1일 가산리(佳山里)의 임시 연극 공연장에서 전개되었다. 이 만세시위를 주도한 인물은 부평리(富平里)에서 서당 훈장을 하던 민영갑(閔泳甲)으로 만세운동 이후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고, 이재만(李載萬)·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과 뜻을 모아 금마면에서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은 4월 1일 가산리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 공연장에서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이 진행될 때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계획하였다.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은 4월 1일 오후 연극 공연의 관객으로 입장하였다. 오후 8시경 이들은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연극관람을 위해 모여 있던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그러자 수십 명의 관객들이 호응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소리높여 외쳤다. 이날의 만세시위는 곧이어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이후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만세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제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여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물 5명도 붙잡혔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금마면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연행되었고, 일제 경찰의 조사 이후 즉결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3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의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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