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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輔永

輔永

1890. 2. 12 ~ 1955.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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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輔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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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주(楊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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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양주군 미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890년 2월 12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미금면(渼金面) 평내리(坪內里, 현 남양주시 평내동)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1919년 3월 13~14일까지 이틀 간 마을 구장인 이승익(李昇翼)·기섭(丁基燮)·우보현(禹輔鉉)·이석준(李錫俊) 등과 함께 미금면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미금면에서는 평내리를 중심으로 양주군 최초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 만세운동은 마을의 구장이었던 이승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한국의 독립을 희망하는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조선총독은 만세운동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전국에 「고유문(告諭文)」을 배포하였다. 마을 구장 이승익은 이를 만세운동의 계기로 이용하였다. 조선총독이 보낸 「고유문」의 내용을 알려야 하니, 주막으로 모이라는 구장의 통지를 받고 정기섭·우보현·이석준·김영하(金永夏) 등 100여 명의 마을 주민들과 함께 주막으로 갔다. 마을의 주민 대부분이 모이자, 이승익은 “주민들은 쓸데없는 유언비어에 열중하여 되지도 않은 일에 광분하지 말라. 일본제국은 전승국이므로 한국의 통치에 관해서는 조금도 변경의 여지가 없다”는 내용의 「고유문」을 낭독하였다. 이에 정기섭·이석준·우보현·김영하 등과 함께 야유를 보내고, 만세를 부르자고 주민들에게 호소하였다. 이에 크게 공감한 100여 명의 주민이 다같이 ‘조선독립만세’를 부르기 시작했으며, 이에 구장 이승익도 참여하며 독려하였다. 평내리의 만세시위는 다음날인 3월 14일 더욱 확대, 발전되었다. 이날 이승익·정기섭·우보현·김영하·이석준 등과 함께 150여 명의 주민들을 지휘하여 평내리의 곳곳을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한 뒤, 금곡리(金谷里)에 소재한 면사무소를 향해 갔다. 면사무소를 향해 행진하는 과정에서 이 모습을 보고 쫓아 온 일본인 도비타 린키치(飛田林吉)가 시위대를 가로막고 해산할 것을 권유하였으나, 이를 무시하고 이승익 등과 함께 시위대를 지휘하였다. 그러나 면사무소로 행진하는 도중, 도비타의 신고로 출동한 일제 헌병대에 의해 만세시위는 강제 해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승익 등과 함께 일제 헌병대에 붙잡혔다. 미금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그 해 8월 1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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