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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保性

保性

1881. 1. 28 ~ 1946.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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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保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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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81년 1월 28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부평리(富平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홍성군 금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금마면의 만세운동은 부평리의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의 주도로 추진되었다. 1919년 3월 1일 이래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한 민영갑은 서울 사정에 밝은 이재만과 협의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들의 계획에 평소 교류가 있던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이 의기투합하면서 만세운동 계획이 구체화되었다. 4월 1일 가산리(佳山里) 이원교(李元交)의 집에서는 임시 연극공연장을 설치하여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민영갑·이재만 등은 이 때 모인 주민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예정대로 연극이 공연되었다.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도 관객으로 참석하여 연극을 관람하였다. 이들은 아직 연극이 공연 중이던 오후 8시경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역설하였다. 이에 공감한 수십 명의 주민들이 만세시위에 동참하면서 연극공연장은 곧바로 만세시위장으로 전환되었다. 이날의 만세시위는 일제 경찰에 의해 해산되었다. 4월 4일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제 경찰이 총기를 발표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 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물 5명이 체포되었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금마면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끌려갔다. 일제 경찰의 조사 결과, 즉결심판에 회부되어, 1919년 4월 23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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