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寶同
寶同1885. 1. 4 ~ 1948. 7.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1919년 서산군 대호지면
- · 정미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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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85년 1월 4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도이리(桃李里, 현 당진군 대호지면 도이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이보동(甫同)을 사용하였다. 1919년 서산군 대호지면·정미면(貞美面) 천의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대호지면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 등 유생들은 고종의 장례 참석을 위해 상경했다가 1919년 3월 1일부터 시작된 만세운동을 경험하고 귀향한 후 대호지면장 이인정(李寅正) 및 면사무소 직원들과 지역 유지, 천도교 세력과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정미면 천의장터의 장날인 4월 4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구체적인 준비를 위해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을 행동총책으로 임명하였다. 송재만은 자신을 중심으로 각 리(里)별로 연락망과 행동선봉대를 구성하고, 면사무소의 시설과 행정력을 동원하여 주민들에게 배포할 독립선언서의 등사, 대형 태극기의 제작 등을 진행하였다. 주민의 동원을 위해 면사무소의 직원들은 면장의 명의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제목으로 “각 가정에서 4월 4일 오전 주민 1명씩 관내 도로 보수에 참여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작성하였다. 이 통지문은 각 마을의 구장들을 통해 주민들에게 전달되었다. 4월 4일 아침 구장으로부터 통지받은 대로 개인 연장을 지참하고 대호지면사무소로 갔다. 도로 보수에 노동력 동원을 예상하고 갔으나, 면장 이인정으로부터 예상 밖의 만세운동을 시작할 것이니 참여하라는 연설을 듣고 공감하여 만세시위대에 동참하였다. 6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시위 대열을 형성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선두에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천의장터로 행진하였다. 천의장터로 가는 동안 만세시위를 목격한 많은 주민들이 호응하여 시위대에 동참하였다. 이들과 함께 천의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대호지면으로 출동한 홍성헌병수비대에 의해 만세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서산경찰서에 갇혔다. 1919년 4월 24일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점이 확인되어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태(笞) 90도(度)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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