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寶國
寶國1872. 1. 24 ~ 1954. 11. 1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서산군 대호지면
- · 정미면 천의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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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72년 1월 24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군) 도리리(桃李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서산군 대호지면·정미면(貞美面) 천의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3일의 고종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대호지면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남상직(南相直)·남상락(南相洛) 등 유생들은 서울로 상경하였다. 이들은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도 참여한 후 귀향하여 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서울의 만세운동 상황을 주변의 뜻있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의사를 타진하였다. 이에 대호지면의 면장 이인정(李寅正) 및 면사무소 직원들과 지역유지, 천도교 세력이 결합하면서 대호지면의 만세운동은 체계적으로 추진되었다. 이들은 5일장이 열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정미면 천의장터를 만세운동의 장소로 결정하고, 장날인 4월 4일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면사무소의 행정망을 이용하여 많은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면사무소 직원들은 관내 도로 보수의 명분으로 주민을 만세운동에 참여시키려는 목적에서 면장 명의의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작성하여 각 마을에 통지하였다. 마을의 구장으로부터 도로 보수에 대한 통지를 받고 4월 4일 아침 다른 주민들과 함께 농기구를 지참하고 대호지면사무소로 집결하였다. 당시 인원은 600여 명이었다. 이 자리에서 만세운동에 동참하라는 면장 이인정의 연설을 듣고, 만세운동의 취지에 공감하여 만세시위 대열에 동참하였다.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로부터 7km 떨어진 천의장터로 향하였다. 천의장터로 행진하는 과정에서 정미면의 주민까지 1,000여 명으로 불어난 군중과 함께 시장 곳곳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천의장터의 만세시위는 오후 4시경까지 진행되었다. 다른 시위 참여자들과 함께 장터 주변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일제 경찰의 발포로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천의주재소 습격에 참여하였다.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고, 일제 경찰을 구타하는 등 주재소를 완전히 파괴한 후 다음의 제2차 거사를 기약하고 자진 해산하여 귀가하였다. 이날의 시위 직후 일제의 홍성헌병수비대가 대호지면으로 출동하여 만세운동 참여자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 검거에 나서면서 붙잡혔다. 서산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4월 24일 태(笞) 90도(度)를 받는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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