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柄回

柄回

1865. 7. 12 ~ 1927. 10. 16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柄回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고령(高靈)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고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9)

관련 사건

  • · 파리장서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9) 1865년 7월 12일 경상북도 고령군(高靈郡) 성산면(星山面) 고탄동(高呑洞, 현 고령군 성산면 고탄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이병문(李柄文)을 사용하였다. 1919년 3월 곽종석(郭鍾錫)·김복한(金福漢)·김창숙(金昌淑) 등 지도층 유림이 벌인 독립청원운동에 참여하였다. 곽종석 등으로부터 당시 진행 중이던 파리강화회의의 내용과 전망을 전해들은 후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설명한 장서(長書)를 파리로 보내면 국제 여론의 지지를 얻고 독립을 실현할 수 있다는 계획에 호응하였다. 당시 일제는 유림의 명의를 도용해 유림은 독립을 원치 않는다는 「독립불원서(獨立不願書)」를 제출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로 인해 유림들의 독립청원운동의 불씨가 더 커졌다. 장석영(張錫英)과 곽종석의 손을 거쳐 완성된 파리장서 초안을 많은 유림과 함께 받아 본 후 일제의 한국 주권 침탈을 규탄하며 독립을 청원하는 파리장서의 내용에 공감하였다. 이후 유림 137명과 함께 연명(連名)하는 방식으로 서명하였고 3월말에 이르러 연명이 완료된 파리장서는 해외로 송달되었다. 1919년 4월 2일 성주 지역에서 만세시위가 벌어졌고, 대대적인 검거가 이루어졌다. 검거 과정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한 일부 유림이 파리장서를 보낸 사실이 일제 경찰에 의해 밝혀졌다. 이에 4월부터 일제 경찰은 서명자가 다수 밀집한 성주 지역을 중심으로 색출 작업을 벌였고, 6월 하순에는 김창숙이 국내 향교로 보낸 파리장서의 명단을 확보하였다. 이 일로 서명한 사실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민성⋮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