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炳泰
炳泰1878. 9. 15 ~ 1968. 1. 3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예천군 용궁읍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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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78년 9월 15일 경상북도 예천군(醴泉郡) 용궁면(龍宮面) 무이리(武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2일 용궁면 용궁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만세운동 계획에 참여하였다. 용궁공립보통학교 4학년생인 정진완(鄭鎭琬)은 평소 일제의 한국 강점에 분노를 느끼며 독립운동에 투신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정진완은 용궁면에서의 만세운동을 계획하게 되었다. 4월 8일 정진완은 동급생 이구성(李九成)과 졸업생 김칠종(金七鍾)을 학교 기숙사에서 만나 이들 또한 일제의 통치에 비분하고 독립을 열망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퍼지는 때를 기회로 만세운동을 실행에 옮길 것을 결의하고, 거사 날짜를 용궁면의 장날인 4월 12일로 정하였다. 만세운동의 성공을 위하여 뜻을 같이할 사람들을 규합하기로 하고, 정진완은 용궁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을, 김칠종은 용궁면 안의 사람들을, 이구성은 용궁면 밖의 사람들을 모으는 책임을 각각 맡아서 만세운동을 준비하였다. 이들과 정규원(鄭奎原)은 기숙사에 모여 태극기 깃발 22개를 만들었으며, 임우경(林遇慶)은 한지 5장을 가지고 왔고, 김국경(金國經)은 깃봉을 만들며 사전 준비를 하였다. 한편 무이리에 살고 있던 대구농림학교 졸업생 이만성(李萬成) 등도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여기에 가담하여 만세운동에 필요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같은 마을에 살던 이구성이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되어 이만성을 찾아갔다. 협의 끝에 의기투합하여 무이리 사람들도 4월 12일 학생 만세운동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만세운동 계획은 하루 전 날 밤에 발각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학생들의 거사 계획을 알아차린 교사 한 명이 일본인 교장에게 보고하였고, 교장이 즉시 이 사실을 헌병대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출동한 헌병들은 주동자들을 검거하여 모두 17명을 붙잡았으며, 이때 학생들의 만세운동 계획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붙잡혔다. 만세운동을 위하여 준비한 태극기 등도 모두 압수당하였다. 4월 17일 예천헌병분대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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