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炳春
炳春1864. 2. 2 ~ 1935. 5. 2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서울 탑골공원 만세운동
- · 독립운동 자금 모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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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64년 2월 2일 전북 임실군(任實郡) 상동면(上東面) 효자촌(孝子村)에서 태어나, 전북 전주군(全州郡) 전주면(全州面) 다가리(多佳里)에서 성장하였다. 조부인 이경화(李敬華)는 승정원 좌승지였으며, 부친 이우홍(李宇洪)은 호조참판을 역임하였다. 20대부터 동학을 믿었으며, 천도교에서 도사(道師)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에는 서울 송현동(松峴洞)에 거주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 위해 천도교 신자들로부터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1890년대 초반을 전후로 동학에 입교했으며, 1892년 삼례집회, 1893년 교조신원운동에 참여하였다. 1894년 1월 동학농민군이 고부를 점령한 후 발송한 격문에서 전북 임실군 대표로 이름을 올렸다. 3월 도접주로서 기포하였으며 진산전투에 참여했다가 관군에 붙잡히기도 하였다. 그 해 9월에는 임실에서 농민군을 규합하기도 하였다. 동학농민혁명 이후로도 동학교단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활동하였다. 대한제국 시기에 천도교 교주(敎主)였던 박인호(朴寅浩)가 각 도(道)의 천도교 지도자들에게 천도교 교인들의 민심을 안정시키고, 배일사상을 고취하라고 지시할 때 박준승(朴準承)과 더불어 전북 지역의 총책임자로 있었다. 이후 1919년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탑골공원 일대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19년 3월 15일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될 때 손병희의 사위이자 천도교 대종사장(大宗司長)인 정광조(鄭廣朝)는 전북 지역의 천도교 교구장(敎區長) 정남수(丁男秀)·정상열(鄭相悅)·장남선(張南善)·박준관(朴準寬) 등에게 독립운동자금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특성금(特誠金) 30만원을 모집하게 하였다. 이때 천도교중앙총부(天道敎中央摠府)의 도사였는데, 각 천도교 지도자들에게 정광조의 말에 따라 특성금을 모금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리고 전북 고산교구장(高山敎區長) 김태현(金台鉉)과 상의하여 신도들에게 최대한 모금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모을 것을 결의하였다. 또한 정광조로부터 특성금의 모금이 예상보다 활발하지 못하므로 각 지역의 천도교 지도자들을 직접 독려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하였다. 이에 정광조의 지시에 따라 각 지역 천도교 지도자들에게 특성금 모금에 적극적으로 따라 줄 것을 당부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마침내 각 지역의 천도교 지도자들로부터 천도교의 기념일(天日)인 1919년 4월 5일 손병희 자 택에서 천도교 중앙총부 지도층과 함께 약 3만원의 특성금을 받았다. 하지만 천도교 측에서 독립운동과 관련 있는 특별성미금을 모집한 사실이 일제 헌병대에 알려지면서 각 지역에서 활동하던 천도교 교구장들이 검거되었다. 그리하여 천도교 중앙총본부에서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특별성미금을 모집하게 한 사실이 드러나 경성헌병분대에 붙잡혀 2회에 걸쳐 헌병의 조사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풀려난 후에는 천도교 통일기성회(天道敎統一期成會)에서 활동하며 천도교의 포교활동에 전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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