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炳贊
炳贊1879. 5. 2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1919년 가평군 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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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0) 1879년 5월 20일 경기도 가평군(加平郡) 북면(北面) 이곡리(梨谷里)에서 태어났다. 평소 「조선독립가(朝鮮獨立歌)」를 숙지하여,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줄 정도로 나라의 독립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생활하였다. 고향에서 사숙(私塾)의 교사로 활동하였다. 이윤석(李胤錫)·정흥교(鄭興敎)·장호형(張浩亨)·장기영(張基榮) 등과 함께 1919년 3월 15일 북면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가평군에서는 천도교계 인물들이 주도하여 북면을 중심으로 군청소재지인 군내면(郡內面) 등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북면의 서당 훈장이자, 마을의 구장(區長)이었던 이규봉은 서울로 상경하여 고종의 장례에 참석하는 과정에서 가평 출신의 천도교계 인사들로부터 독립선언서 2장과 『독립신문』 1부를 수령하여 귀향하였다. 이규봉은 아들 이윤석과 수제자 정흥교에게 서울의 만세운동 상황과 가져온 문서들을 전달하며, 만세운동의 준비를 당부하였다. 이윤석과 정흥교 등 30여 명이 모여 만세시위 준비를 하였다. 이들과 논의를 통해 가평 장날인 3월 15일을 만세운동의 거사일로 결정하고, 그날 아침 일찍 북면 면사무소 앞에 모여 읍내의 가평군청으로 행진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만세시위 계획을 알리는 내용의 「밀통(密通)」을 작성하여 배포했는데, 이는 만세운동에 더욱 많은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3월 15일 아침 면사무소 앞에 집결한 주민들 앞에서 이윤석·장기영·이만석·최종화(崔宗和) 등과 함께 10여 장의 태극기를 나눠 들고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가평군청에서 독립선언식을 하고 공립학교, 군내면 면사무소 등 가평군 읍내의 곳곳을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대규모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가평군수를 비롯한 군내 각 면장들과 가평헌병분견소의 일제 헌병대 등 일제 관헌들이 모두 출동하여 만세시위의 즉각 해산을 명령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저녁 8시경까지 격렬한 만세시위를 지속하였다. 저녁이 되어 만세시위대가 해산하기 시작할 즈음 일제 헌병대는 검거 작전을 개시하였다. 이때 일제 헌병대에게 만세시위의 주도자 중 한사람으로 파악되어 이윤석 등 10여 명과 함께 붙잡혔다. 일제 헌병대의 조사과정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 점이 인정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2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7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최종적으로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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