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준
金敬俊1882. 1. 21 ~ 1929.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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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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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8) 1882년 1월 21일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삼청동에 거주하였다. 1919년 3월 당시 직업은 이왕직 양악대(李王職 洋樂隊) 악수(樂手)로서 동리 주민들에게 만세 시위 참여를 종용하는 연설을 하고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5일 자신이 살던 서울 삼청동(三淸洞)에서 길에 모여 있던 삼청동과 팔판동(八判洞)의 주민에게 “3월 1일 이래로 경성부(京城府) 각 동에서 군중이 조선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시위운동을 하고 있는데도 삼청동과 팔판동 주민은 왜 독립 만세를 부르지 않는가. 조선은 장차 독립하려 하고 있다. 모름지기 노력 분투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취지의 연설하였다. 3월 5일 학생단 시위가 벌어진 이후 3월 21일까지 서울에서는 두세 차례의 산발적인 시위 외에 이렇다 할 시위운동이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러던 3월 26일과 27일 삼청동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만세 시위를 벌이자 김재완(金在完) 등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서울 시내를 행진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에 붙잡혀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6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당하였고, 다시 상고하였으나 8월 21일 역시 기각당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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