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武壽
武壽1887. 11. 7 ~ 1943. 5.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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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87년 11월 7일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대성면(大城面, 현 청도읍) 내호동(內湖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이무수(李戊守)·이종호(李鍾護)를 사용하였다. 농업에 종사하였다. 만세운동의 여파가 가시지 않고 있었던 1919년 5월 7일경, 일본인이 한국인 어린이에게 상해를 입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상해를 입힌 일본인은 미즈노 기사부로(水野喜三郞)였다. 야마구치 도라오(山口虎雄)와 미쓰다 사쿠지(光田作次)와 함께 청도군 대성면에 있는 유천시장(楡川市場) 부근에 위치한 김달선(金達先)이라는 주민의 집에서 숙박을 하고 있었다. 5월 7일 이종현(李鐘鉉) 등 어린이가 김달선 집 앞에 있는 도로에서 노는 소리가 방 안에 들려오자, 미즈노 기사부로가 독서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칼을 들고 나가 이종현의 입술을 베어 버렸다. 이 사건이 일파만파 퍼져 이종현의 형 이종학(李鍾學)이 알게 되었다. 이런 소식을 듣자 이종학은 매우 분개하였고, 이종학을 비롯한 동네 청년들은 함께 김달선의 집에 찾아가 일본인 3명이 묵고 있는 방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복수를 하기로 사전에 논의하였다. 이종학·김영곤(金永坤)·김도곤(金道坤) 등과 함께 방으로 들이닥쳐 미즈노 등을 구타하는 데에 가담하였다. 미즈노는 구타를 당하던 와중에 도망쳤으나, 마을 공동 우물 근처에서 다른 주민에 의해 다시 붙잡혔다. 처음에는 청년 약 20명이 가담하였는데, 이때 군중이 더욱 늘어나서 주변의 주민들이 의거 현장에 운집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식을 들은 일제 경찰이 진압하려고 했으나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이른바 소요죄 등으로 기소되었다. 1919년 7월 1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가택 침입죄, 상해죄, 소요죄 등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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