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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明儀

明儀

1900. 12. 29 ~ 1930. 7. 23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明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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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강릉(江陵)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강릉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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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1)

관련 사건

  • · 1919년 4월 강릉군 강릉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1) 1900년 12월 29일 강원도 강릉군(江陵郡) 정동면(丁洞面) 운정리(雲亭里, 현 강릉시 운정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강릉보통학교 4학년에 재학중이었다. 4월 2일 강릉군 강릉면 장터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4월 2일 강릉면 만세운동은 강릉군에서 제일 먼저 일어난 만세운동이었다. 이 만세운동을 계획한 인물은 ‘105인 사건’으로 고초를 겪고 강원도로 내려와 목회 활동을 하던 강릉 감리교회(監理敎會) 목사 안경록(安慶祿)이었다. 안경록은 강릉보통학교 김모(金某) 교사와 함께 4월 2일 강릉면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결의하고 사람들을 규합하였다. 김모 교사가 학생들에게 만세운동 계획을 알리고 동참을 권유하는 과정에서 참여를 결심하였다. 이후 다른 학생들에게 시위에 동참할 것을 독려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적극적으로 만세운동 준비에 참여하였다. 감리교회 측에서도 안경록을 중심으로 교인들이 태극기를 만들며 만세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밀리에 전개되던 만세운동 준비가 일제의 감시망에 포착되면서 거사 하루 전날인 4월 1일 발각되고 말았다. 주도 인물로 지목되어 다른 강릉보통학교 학생들과 함께 붙잡혔다. 일본 경찰의 모진 고문과 회유에도 만세운동 계획을 끝내 말하지 않았다. 그 결과 안경록 등 감리교회 교인들은 다음날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펼칠 수 있었다. 만세운동에는 50여 명의 군중이 참여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강릉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이후 동아일보 강릉지국 총무 겸 기자가 되어 1927년 4월 강릉철필단(江陵鐵筆團)과 보도단(報道團)을 창립하여 임시위원장을 맡았다. 강릉 옥계면장(玉溪面長)의 비행 사건을 조사하여 이를 보도하는 등 활발한 언론 활동을 전개하였다. 강릉청년연맹 혁신대회 위원으로 참여하였다. 또한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의 추도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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