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李萬熙

萬熙

1890. 11. 13 ~ 1959. 7. 25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李萬熙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영덕군 영해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90년 11월 13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인양리(仁良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그 해 3월 18일 영덕군 영해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영덕 지역에서는 지품면(知品面) 낙평동(洛坪洞) 예수교 북장로파 교회의 조사(助事) 김세영(金世榮)이 가장 먼저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12일 교회에서 구세군 참위(參尉) 출신의 권태원(權泰源)을 만나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논의하고 사람들을 모았다. 영해면에서는 권태원과 병곡면(炳谷面) 교회 조사(助事) 정규하(鄭奎河)와 논의한 후 3월 18일 시장에서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고, 영덕 각 지방의 유지, 기독교인 등을 설득하여 3월 18일 장날 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영덕군 영해면에서는 성내동(城內洞) 시장 장날을 맞이하여 각지에서 모인 군중 2,000여 명이 태극기를 흔들고 시장 부근에서 만세시위를 하였다. 시장에서 만세시위를 보고 취지에 동의하고 참가하여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영해경찰관주재소 주임 순사 스즈끼 지로(鈴木鶴次郞)와 순사들이 내린 해산명령에도 불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고 만세시위를 지속하였다. 그 과정에서 영해공립보통학교, 영해경찰관주재소, 영해면사무소 등으로 행진하였고, 시위를 제지하려고 하는 일제 경찰과 충돌하였다. 순사들을 공격하는데 앞장섰으며 제복, 패검 등을 훼손하였고, 학교 등의 기물을 파손하면서 일제 식민통치기관에 대한 강한 저항감을 드러냈다. 이 같은 활동 중에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 공무집행방해, 건조물손괴, 기물손괴, 공문서훼기, 상해,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고 풀려났다. 3개월 넘는 조사와 재판 기간 동안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