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洛周
周1896. 11. 3 ~ 1923. 10. 1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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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6년 11월 3일 경기도 연천군(漣川郡) 남면(南面) 화산리(華山里)에서 태어났다.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는 1897년 5월 17일 태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연천군 미산면(嵋山面) 석장리(石墻里)에 거주하였다. 1919년 3월 21일 오후 3시경 연천군 백학면(百鶴面) 두일리(斗日里) 김흥서(金興瑞) 집에서 조우식(趙愚植)이 “오늘은 두일리 장날로 만세시위를 벌이기에 좋은 기회이므로 독립 만세운동을 결행하자”고 주창하였다. 이에 홍순겸(洪淳謙), 한상혁(韓相赫) 등과 함께 찬동하고 결행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날 오후 6시경 두일리 장터에서 조우식, 홍순겸 등과 함께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시장 주위에 있던 김복동(金復東), 정현수(鄭賢秀), 박영학(朴永鶴), 김문유(金文裕), 구금룡(具今龍) 등이 참가하여 만세를 불렀다. 점차 더 많은 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이곳의 만세운동 주도자들은 3월 1일 이후 전국 각지에서 전개되는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여 듣고서 각각 그 취지에 찬동하고 기회가 되면 실행에 옮길 것을 다짐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두일리 시장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자 이에 앞장서서 참가하게 되었다. 두일리 시장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자 많은 군중이 주도자들의 주위에 모여들면서 점점 그 기세가 고조되었다. 당시 백학면 면장 윤규영(尹圭榮)이 시장 모처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정현수, 홍순겸 등과 같이 면장을 강제로 끌고 왔다. 이후 면장에게 구타와 협박을 가하면서 ‘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강요하였다. 이어서 만세운동에 참가한 군중과 함께 백학면사무소로 몰려가서 면사무소의 직원들에게도 ‘독립만세’를 같이 외칠 것을 요구하였다. 이들이 응하지 않자, 정현수가 면사무소에 돌을 던져 유리창과 문을 파괴하기도 하였다. 이후 밤 10시경 주도자들과 함께 200여 명의 군중을 이끌고 이웃한 미산면 마전리(麻田里)를 향하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행진을 시작하였다. 다음날인 3월 22일 새벽 3~4시경 마전향교(麻田鄕校) 앞에 도착한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연호한 후 다시 미산면 석장리로 돌아가는 도중 마전경찰관주재소 앞에서 일본군 헌병에게 붙잡혔다. 1919년 5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7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1년 6월로 감형되었다. 다시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다가 1920년 6월 17일 만기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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