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樂然
然1899. 1. 14 ~ 1919. 11.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99년 1월 14일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양산면(陽山面) 가곡리(柯谷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이낙연(李洛然)이라는 다른 한자의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1919년 3월 30일 영동군 학산면(鶴山面) 서산리(鋤山里) 경찰주재소 앞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30일 영동군 양산면 가곡리의 이헌주(李憲周), 이채연(李采然), 이광연(李光然) 등 10명과 함께 마을 주민들을 이끌고 며칠 전 만세시위를 기도하다 붙잡힌 보통학교 학생 2명의 구출을 위해 이웃한 학산면 서산리의 경찰주재소로 향하여 행진해 갔다. 행진 도중 마침 영동~무주 간 도로 보수공사에 부역 나온 수많은 학산면민과 합세하게 된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연호하며 행진하는 등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이헌주, 이광연, 이채연, 이진국(李鎭國) 등과 함께 경찰주재소 앞에 집결한 시위 군중을 지휘하여 구속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돌을 던졌다. 주재소의 창호와 전화기 등 내부의 기물까지 파괴할 정도로 격렬하게 공격을 계속한 끝에 구속자의 석방을 이끌어 냈다. 이어서 시위군중의 위세에 압도된 일제 경찰까지 ‘독립만세’를 연호하게 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이 증원되어 시위대를 해산하고 주도자를 체포할 때 붙잡혔다. 1919년 6월 13일 대전지방검사국 공주지청에서 이른바 소요죄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7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던 중 11월 8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재곤⋮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